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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r 31. 2024

직원은 키오스크

키오스크와 친해지기

영화 FACE OFF

1997년 작품이니 고전 까진 아니라도 반고전 정도는 될 듯한 이 영화를 세 번은 본 것 같다.

한 번은 내 의지로 봤고 두 번은 명절 특선이나 영화 채널에서 봤다.

줄거리보다는 얼굴 이식이라는 소재가 그 당시 신박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아직 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멋진 존 트라볼타 때문이 아니라 단지 픽션이라고 생각했던 얼굴 이식이 2016년

실제로 성공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 Face off 영화 속 얼굴 식이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말이다.


답은 ''였다.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전문가는 말했다.


역시 영화는 영화 일뿐 현실과는 다르지라고 생각하며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어느 날 얼굴 이식이 성공했다는 해외 토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 기부자가 나타나서 얼굴이 망가진 환자의 얼굴 이식에 성공했다는 귀로 듣고도 믿기지 않았던 소식이었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기술이 가능하게 된 현실

후로도 나는 날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드론, 휴대폰과 연결되는 티브이 기술(Smart view)  등 의 개발에 수시로 놀랐고 감탄했다.


세상이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한계를 넘어서 진보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 팝콘이 포함된 영화 쿠폰을 모바일로 선물 받았다.

매는 사용 설명서에 의존해 휴대폰 앱으로 했고 팝콘을 쿠폰으로 주문해야 하는데 극장 안의 직원들이 모두 키오스크였다.


이제 식당에서도 로봇이 서빙을 하는 시대니 

영화관에 일렬횡대로 서 있는 키오스크쯤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당당히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하지만 속으로 내 뒤에 다른 사람이 줄을 서지 않기를 바랐다.


자꾸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고 있는 내 힘없는 손가락들이 마냥 애처로웠다.

뭔가 척척 누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쉽지 않다.


키오스크라는 직원은 질문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이 조금만 지체되어도 처음부터 다시 하라며 초기 화면으로 화면을 돌려버리는 냉정한 직원이었다.

고객 만족 평가에 1점을 주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항의해 봤자 소용없다.


함께 극장에 간 남편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내 손가락이 헤매며 갈 곳을 잃자 남편의 입에서 이거다 저거다

잔소리 비스무리 한 게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뭔가 지시할 때 검지가 아니가 중지를 사용하는데 그날 역시 중지 손가락 하나만 펴서

이거다 저거다 하며 오묘하게 기분 나쁜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럼 뭐하노?

다 틀렸다.

남편도 별수 없다. 나보다 더 했음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다시 도전해 보았다. 도~~전


우리 부부는 콜라를 싫어하기에 커피로 음료를 교체해야만 다.

갈 곳 잃은 손가락은  좌우로 종횡무진했고 손가락과 반주를 맞추듯 방황하는 눈동자는 화면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지만 결국 화면이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 끝에 다행히 원하는 팝콘을 선택했고 음료도 커피로 교체했다


 난 키오스크 사용 성공에 은근한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나도 저런 거 할 줄 안다고...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번호표를 남편에게 주고 주문한 팝콘과 커피를 픽업하라 일렀다.


화장실에서 나온 후

남편의  얼굴은 뭔가 쫓기는 사람이었다.

허둥지둥 커피를 찾아온 남편은 그 당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 같았다.

우리 집 40대 후반 남편은 커피는 찾았지만 팝콘 찾기는 실패했던 것이다.

뉴욕 한 복판에서 길을 잃은 초보 여행객처럼 남편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면 직원은 주문한 팝콘을 맛대로 용기에 담아낸 후 특정 장소에 올려두고 번호를 누른다.

남편은 허둥지둥 커피를 찾다 팝콘은 놓친 것이다.

번호가 지나 놓친 팝콘은 찾을 길이 없어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자책을 하고 있었을 지도

'내가 이런 것도 못 하다니' 하면서..


본인의 미션에 실패한 남편은 또 특기를 살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커피 찾는 곳과 팝콘 찾는 곳이 달라서 어쩌고 저쩌고...

변명은 이해가 안 됐지만 팝콘을 못 찾은 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사람 직원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팝콘을 받아 영화를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라디오 뉴스에서

삼성 전자가 지금부터 나오는 갤럭시 휴대폰의 기본 자판을 쿼티로 바꾼다는 소식을 접했다.


난 하늘, , 사람을 본떠 만든 이 천지인 키보드를

난 25년 동안 사용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휴대폰 키보드를 천지인 쓰는지 쿼티 쓰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천지인을 쓴다고 대답했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은 나더러 늙은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 세월 사용되던 천지인 자판이 기본 자판에서 밀려나게 된 이유는 Z세대가 천지인 자판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사용하는 자판조차 다른 요즘 것들...




SNS에 그럴싸하게 뭔가 올리는 것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고 공을 들여해야 하는 작업도 귀찮다.

뭔가 척척 해 내는 요즘 세대에 비해 모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아 손도 느리다.

디지털 격차의 하위 레벨에 내가 있는 듯하다.

나이 먹는 만큼 디지털 사용 능력이 떨어지는 건 단지 나이 때문일까?


시간은 일정 한 속도로 자비 없이 흐른다.

시간은 흐르는데 사람은 자꾸 고여 있고 싶어 한다.

익숙한 것 편한 것만 찾게 되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이제 입는 옷까지 늘 입던 스타일만 찾게 된다.

신발도 편한 거 , 옷도 편한 거 , 일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고 모든 변화가 어색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기계 천지 인 세상이 되었다.

극장, 도서관, 음식점. 커피숍, 관공서.. 등등 기계가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기계와 소통을 못하는 중년이 되었다간 이 좋은 세상 못 해보고 살아야 하는 게 너무나 많아질 것 같은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게 될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기보단 뭔가 배워 익히는 중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배워야 할 것들이 계속 생긴다는  어쩌면 현대를 사는 인간들이 가진 공통의 문제가 아닐까?

배울지?  그냥 살지? 는 개인의 선택 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배우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면

밖에서 커피 한잔 주문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모른다고 알려고 하지 않고 귀찮아서 포기하면 똥멍충이가 되기  좋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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