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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r 24. 2024

정의 구현 오지라퍼 아줌마

킥보드 소년 잡기

누구나 정의롭기를 희망하지만 실천하기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의를 외치다가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고 불필요한 송사에 휘말리수도 있다.


앞에서 탕후루를 먹고 난 후 꼬지를 횡단보도 옆 화단에 쑤셔 넣은 학생을 보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끝내하지 못했다.

대신 꼬지와 종이컵을 빼서 그 학생 대신 쓰레기 통에 버리고 만족해하는 나는 자칭 평화주의자이고 타칭 소심쟁이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꾸 아들 또래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십 대들은 이런 나를 아마도 꼰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비겁 보다 용감을

안주보다 도전을

불의보다 정의를 추구해야 마땅하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내 자식 보듯 보는 게 세상 부모 마음이 아닐까?




아들이 킥보드를 타 본 적이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 후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기서 킥보드는 전동 킥보드이다.)


따뜻한 봄의 어느 퇴근길이었다.


 봐도 앳된 얼굴의 그 아이는 킥보드를 갈지 자(之) 운전하며 도로의 중앙선을 위태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하늘하늘 노란 원피스를 입고 퇴근을 하던 길이었던 나는 동네 농협 ATM기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나오던 차였다.


그때 무슨 용기가 나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원피스의 조신함이 무색하게 소리로 소리쳤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야 거기서 "

"야 거기서 "


퇴근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킥보드 소년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곧 노란 원피스 아줌마인 내게 많은 눈들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이미 거기서 라는 한마디와 함께 집중된 시선들 때문에라도 멈추긴 걸러 먹었다 싶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못 먹어도 고다.


내가 고래고래 서라고 소란을 피우니 킥보드 소년은 멀리 킥보드를 세우고 내렸고 가던 길을 려고 했다.

그때 그냥 킥보드를 세우고 내려서 두 발로 직립보행 하는 킥보드 소년을 보냈어야 했는데

나이가 들면 한 번씩 뇌가 판단력을 상실하는지 그러지 못했다.


그 아이를 쫓아가 잡아 세웠다. 

그리고 격한 감정과 함께 타이름의 목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눈치챈 킥보드 소년은 욕으로 내게 선방을 날렸다.


"씨발"

아직 얼굴이 아기 같다. 중 1,2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외모의 작은 입에서 나오는 C발에

내 발작 버튼이 작동되었다.


"씨발? 이 새끼가 어디서 욕이야?"

라고 미친 여자처럼 소릴 질렀지만 이내 심박수는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키가 190센티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구에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르르 몰려와 내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무슨 일 인지 묻기 시작했다.

이거 말로만 듣던 그 다굴을 내가 당하는 건가 

요즘 청소년들 잘못 건드렸다 골로 가는 경우가 있다는데 내가 그 주인공이 되겠구나 

별별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갔다.


" 누구야?"


"쟤(킥보드 소년)랑 아는 동네 형인데요."


"넌 동생이 저렇게 위험한 걸 타는데 왜 안 말려? 학교 어디니?"


"자퇴했는데요."


아이구 난 오늘 죽었구나...

건장한 체구의 아이는 보드 소년과 함께 다니는 불량한 자퇴생이었고 그 주변에 나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됨을 그들도 느꼈는지 내가 하는 말을 겉으로는 군소리 없이 듣는 듯 보였다.


 내 아들을 훈계했던 것처럼 법 조항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무면허 킥보드 운전 불법, 헬멧 미착용 불법, 도로 교통법 위반 등의 내 지적 재산을 내뿜으며 그들의 기를 죽였다.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인사 사고까지 들먹이며 12대 중과실에 해당 형사 처벌 불가피.. 등등을 읊어댔고 그렇게 한 번 더 방어전을 펼치며 정신줄을 다잡았다.


다행이었다.

아이들 표정이 나를 한대 칠 것 같지 않았음과 동시에 다행히도 내 말에 수긍하는 듯 후퇴할 기미가 보였다.


결국 아이들은 앞으로 킥보드 타지 말라는 내 말에 건성으로라도 알겠다는 수긍의 뜻을 보였다.

이제 난 살았구나 안도하는 순간 건장한 체구의 아이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내게 하였다.


혹시 변호사세요?

식은땀이 쏟아지기 직전이었지만 이럴 때 동공을 흔들며 솔직해졌다가

이 노란 원피스 아줌마가 빙다리 핫바지란게 들통 날 것 같아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뻥을 치고 말았다.


변호사는 아닌데 비슷한 일 하는 사람이야

그러니 앞으로 동생이 킥보드 타면 말려


강사라는 직업대신 변호사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뻥을 치고 그제야 차로 돌아와 운전대를 잡았다.


난 그들이 내 차 번호라도 외울까 봐 걱정이 되어 룸미러로 흘깃흘깃 그들을 지켜보았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겁도 없이 무서운 애들을 훈계했다며 혼이 났고 그 뒤 그 청소년들을 다시 만날까 봐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이 나이 먹고 난 도대체 어떤 정의로 구현하고자 한 것일까?

단지 내 아들 또래의 아이가 킥보드를 타는 행위는 공동의 선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일반적 정의를 구현했을 뿐이라 말하고 싶다.

(일반적 정의 법을 비롯한 사회 규범을 잘 지킴으로써 공동체를 행복하게 하는 행위)

다리가 후달리는 치명적 부작용은 겪었지만 말이다.



킥보드 소년은 나를 만나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겠지만 난 그 소년이 나를 만나 목숨을 건질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는 그렇다.

내 자식도 안타깝고 이름 모를 남의 자식도 안타깝다.

자식 키우다 보니 자꾸 자식 또래 아이들의 행동에 오지랖을 피우게 된다.

내 자식도 남의 자식도 다 잘 살았으면 하는 나는 정의롭고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

아니면 진짜 꼰대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두편 동시에 연재 되었습니다.

3편도 애독 부탁드립니다.


https://brunch.co.kr/@salsa7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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