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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r 24. 2024

40대 현재 내게 자식이란

배 속으로 다시 넣고 싶다.

나는 애국자다.

인구 절벽을 해결하고자 미친 듯 날뛰는 정부의 정책을 미리 예견하고 17년 전에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말이다.


난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 배속으로 낳은 내 아이는 똥을 한 바가지 싸질러 놔도 예뻐 죽겠더라.


내 등에 업혀  엄마 엄마 부르며 쫑알 대던

순간을  깊숙한 곳에 각인시켰다.

태권도에서 합숙하고 온 다음날 문을 열고 들어오며 울면서 나를 찾던 그 모습도 영원히 가슴속에 새겼다.


엄마는 자식이 떼는 걸음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나도 그랬다.


40대 중반이 되고 내 아이도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자랐다.

그리고 싸놓은 똥도 예쁘던 내 아이는 우라질 놈이 되었다.



내가 가슴속에 저장해 놓고 꺼내기 꺼려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식 이야기이다.

자식은 그런 존재다. 남들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자식 나쁜 건 밖으로 하나도 끄집어낼 수 없어 가슴속에 방을 만들어 저장해 둘 뿐이다.


아들은 우리 부부와 사뭇 다른 예쁜 외모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자아도취를 덤으로 얻었다.

작은 얼굴 뽀얀 피부의 아들은 머리를 말리기와 스타일링에 시간을 투자하며 하루를 시작한.

그리고 집으로 귀가한 후에는 각종 화장품을 쳐발쳐발 바르며 하루를 마무리한.


봉사 정신은 또 얼마나 투철해 학원 시설 유지에도 큰 공을 세우고 있다. 

학원을 가기 전에도 때를 빼고 광을 내는 아들은 내 주머니를 털어서 학원의 전기세, 수도세 등을 내주고 있다.

숭고한 아들의 희생에 눈물겹게 돈이 아깝다


중학교 내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아들은

고등학교 첫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베짱이로 빙의되어 기타를 치며 놀았다. 그리고 몸에 근육이 빠질까 불안하다며 헬스장에서 헬창 흉내를 내며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빠질 근육은 걱정하면서 본인 때문에 빠지는 애미의 정신머리는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이도 저도 하기 싫으면 독서해라 답을 찾을 것이다라는 나의 간절한 말에도 귀가 두 개라는 이점을 충실히 활용하며 듣고 흘리기를 반복한다.


내가 지때문에 유명한 철학관들을 찾아다니다

결국 그 돈이 아까워 역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슬픈 스토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하기만 다.


4살 때 큰 수술을 받은 큰 아들은 고맙게도 그 후 잘 자라주다 사춘긴지 지랄병인지 모를 정의 내릴 수 없는 질풍의 시기를 겪고 있다.

내 세상은 무너졌고 지 세상은 혼란했다.


아들이 수술을 받던 그때는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빌었고 욕심 없이 아니 욕심부리지 않아도 잘 자라주는 아들이 늘 고마웠다.


근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지 비단 엄마라는 존재도 그 간사함의 덫을 피해 갈 수 없었다.


40대가 되고 아이의 사춘기를 겪고 나니 내가 과연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반문하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이 어쩌자고 자식을 낳는 오만한 짓을 저질렀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남편은 친구 같은 엄마를 고수해 온 내 육아가 실패했음을 수시로 언급하며 가슴을 후벼 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과거를 반추해 보기도 했다.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내 육아 능력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고 그냥 다 내 잘못 인 것만 같았다.



본디 자식은 잘 놀아도 걱정, 못 놀아도 걱정

말이 많아도 걱정, 말이 없어도 걱정

잠을 안 자도 걱정 많이 잠을 많이 자도 걱정

자식은 공부 못 해도 걱정

아프면 초대형 걱정..

자식은 본인들이 준 행복 이상의 걱정거리들을 생산해 내는 존재인 것 같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무척이나 부러운 사람들이다.


결국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었다.


관 뚜껑이 닫혀야 자식 걱정이 끝난다는 아빠의 말이 단 1도 틀리지 않음을 느낀다.

부모님에게도 자식인 난 평생 걱정스러운 존재인가 보다. 인정한다.

지금도 부모님이 보신다면 속상할 글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아들도 먼 훗날 부모가 된다면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 부모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 노릇,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수많은 노릇이라는 이름 안의 사람도리 중 제일 힘든 것이 부모 노릇이었다. 


그러기에 자식은 이런 고생 안 했으면 싶어 하는 소리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


(4편 계속)

https://brunch.co.kr/@salsa7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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