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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r 26. 2024

이 목욕 반댈세

크림이의 짧은 꼬리가 다리 사이로  한 없이 쳐진다.

화장실 안 욕조는 목욕을 싫어하는 크림이에게 불편한 공간이다.

물이 샤워기 구멍의 수압을 뚫고 나오는 유쾌하지 않은 격렬한 소리를 듣고 세상 불쌍한 눈빛을 보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얀 털을 따뜻한 물에 힘없이 뭉쳐지기 시작하면 고개를 사정없이 아래로 떨구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크림이는 목욕을 싫어하는 개다.



SNS에서 보면 욕조에 편히 누워 탕 목욕을 즐기는 개들도 있던데 크림이는 물이 닿기도 전에 고개를 떨구니 목욕을 하긴 해야 하는데 괜히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속전속결 목욕 후 다음 코스는

크림이가 목욕 보다 더 싫어하는 털 말리기 시간이다.

물에 빠진 생쥐 아닌 개꼴이 된 크림이를 수건 짜듯 꼭 짜서 드라이를 시작한다.

벽에 붙어 머리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나 죽는다를 시전 하니 또 내가 나쁜 사람이 된 듯하다.

머리 어디갔니?

털 말리는 건 견주에게도 고된 일 중에 하나다.

털을 완벽하게 말려주어야 습진과 같은 피부병이 예방되니 힘이 들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돈을 들여 애견 샵에 맡길 때도 있지만

요즘 애견 샵은 인기 업종이라 오늘처럼 하루 전에 예약을 잡으려면 이미 일주일 예약이 다 차서 원하는 날짜에 목욕을 할 수가 없다.

날짜는 없고 크림이의 묘하고 꼬릿한 냄새는 계속 남아 후각을 자극했다.


목욕과 오랜 털마리기의 터널을 빠져나온 크림이는 지친 몸을 포근한 이불에 맡기고 누웠다.

꼬릿한 냄새 대신 풍기는 싱그러운 샴푸 향에 뽀샤시한 이 녀석의 흰 털 때문에 또 가만히 두지 못하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이래나 저래나 피곤한 하루를 보낸 나의 반려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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