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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전쟁이라더니

by 송주

소아과 대기 환자가 50명은 기본이라 들었다.

사람은 간사해서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관심사라는 바운더리 밖으로 살짝 내놓는다.

나도 그렇다. 아이들이 내과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붐비는 소아과 진료 전쟁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아들 중 하나가 수두에 걸렸다.

당연히 피부 발진이 생기니 피부과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수두가 맞는 것 같다 하셨지만 미성년자 수두는 소아과에서 더 잘 보실 것 같다며

두 층 아래의 소아과에서 진료를 보길 권하셨다.

그럴 법도 하다 아이는 아직 만으로 13세이고

학교 결석을 위해 제출할 서류를 받으려면 소아과에서 확실히 진단을 받는 게 나을 듯했다.


소아과는 참 오랜만이었다.

말로만 듣던 소아과 풍경은 어린아이들과 피곤한 얼굴의 엄마들로 소파 자리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들도 병원에 오면 나처럼 자동으로 피곤해 지나보다 생각하며 빈자리에 앉았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손을 잡고 소아과에 들락날락거렸는데 그때도 대기 환자는 항상 많았던 것 같다.

대기 환자는 무려 30명..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진료를 보았다.


아들은 전염성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있기 전까지 학교에 가지 못 하고 자택 감금 되었다.


그리고 수포 생성이 멈추고 딱지가 앉은 지 이틀 정도 후 난 감금 된 한 마리 이 지저분한 짐승을 내일은 무조건 학교에 보내야겠다 결심했다.


소아과 진료 시간은 7시

내 퇴근 시간은 6시 반

오전에 시간이 날 때 미리 가서 접수해 놓으면 저녁 퇴근 후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일단 전화부터 먼저


"오전 중에 접수해 놓고 7시 전에 진료 보러 가도 될까요?"

"접수 순이라 안 됩니다. 순서가 되면 꼭 자리에 계셔야 하고요. 참고로 어제 같은 경우 4시 반에 진료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뭣이? 4시 반

순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직장맘은 아이가 아플 때 제일 힘들다.

하룻밤 새 독감 같은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애 봐줄 사람이 없는 직장맘들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진다. 일이냐? 아이냐?

당연 아이겠지만 당장 회사나 일이 문제다.


답답한 마음에 지역 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가

고약한 댓글들에 마음을 다쳐 잊히지가 않는다.


글 쓰신 엄마 혹시 독감인 거 숨기고 어린이집 보내실 건 아니죠?


글로 저지르는 죄도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결국 아들은 혼자 소아과에 가서 29번째로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혼자 갈 수 있는 나이긴 하지만 안쓰럽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중간에 잠시 딴 곳도 다녀왔다 했다.

내일은 학교 갈 수 있게 서류 부탁드려요라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시킨 미션도 잘 수행하고 서류까지 챙겨 왔다.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혼자 할 수 없다면 부모가 시간을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마냥 기다리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혼자 하는 것에 좀 더 빨리 익숙해지는 것 같다.




각설하고

4시 반에 접수가 마감이면 직장맘들은 소아과 접수를 위해 가족이나 지인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인데 동원할 그들이 없다면 진료를 못 보는 건가?


아이가 아플 때 발을 동동거리던 그때와 지금이 변한 게 없다.


직장 맘을 위한 한국은 없는 듯싶다.





https://brunch.co.kr/@salsa7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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