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는 두려워

안정추구형 중년

by 송주

얼굴에 찍힌 베개 자국이 없어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피부의 탄력이 떨어진 탓에 자국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찍힌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도 대수롭지 않다. 잠시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으면 그만이다.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움도 줄어들었다.

얼굴의 베개 자국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웃어도 같이 웃어버리고 마는 천연덕스러운 아줌마가 되었다.


30대는 말 그대로 앞만 보고 달렸다.

28살에 결혼해 아이 둘 낳고 기르며 일하면서

자격증 2개 , 수료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뭔가 해 놔야겠다 싶어 끝없이 머리를 싸맸던 것 같다.

그 대가로 번아웃이 와서 삼 개월 휴직했다.

업계 특성상 복직이 힘든 직업군이었지만 원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따 놓은 자격증을 설령 써먹지 못할지언정 성취감과 안정감을 얻었기에 만족한다.

이렇게 애 키우며 직장 일에 자기 계발까지 하며 열심히만 살았더니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나는 40살이 되던 해 내 이름으로 된 사업을 해 보고 싶어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학원 사업에 마음이 생겨 좋은 자리를 물색하고 다녔다.

하지만 임대료와 학생 수 당 수강료 기타 부대 비용 등을 요목 조목 따져 계산해 보니 유지 아니면 쪽박으로 결과가 모아졌다.

그냥 지금 하는 월급쟁이 프리랜서가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이를 몇 살 더 먹어 버렸고 이제는 그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사업을 하면 대박이 터진다는 철학관의 예언이 있었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수입과 현재의 수입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포기해 버린 셈이다.


내가 오너가 되는 멋진 꿈 이면에 금전적 손해라는 리스크가 존재했다. 반대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밤늦게 까지 수업이든 잡무든 내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그것들을 다 해 낼 자신이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뭔가 새로 시작하기에 쉽지 않은 나이다.

30대의 긴 터널을 지나며 피땀눈물 섞인 내 공든 탑이 조금이라도 무너진다면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마치 피부 위 눌린 베개 자국이 사라지는데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이 나이에 돈이든 건강이든 뭔가를 잃는다면 다시 복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복구가 안 될 수도 있다.

섣불리 뭔가 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저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패기와 무모한 용기가 사라 졌다.

지금 보다 나빠질 가능성을 모조리 배제하고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대박을 꿈꾸면서도 시간이 나면 책이나 읽으며 신선 놀음 하고 싶은 안정 추구형 중년이 되었다.



이 와중에 남편이 대놓고 드라마 작가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요일 저녁마다 회사가 가기 싫다며 내게 시꺼먼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곤 하는 남편이 인기 드라마 굿파트너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난 글쓰기를 배워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 드라마 작가 쪽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구원을 원하듯 말을 이어 갔다.

"그 작가도 본업이 있고 이번에 처음 쓴 드라마가 대박이 났데." (본업은 변호사이고 처음 썼다는 것은 미확인 정보입니다.)


그 뒤로도 그는 계속 김은숙 작가가 어쩌고 어쩌고 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돈 안 되는 글 쓴다며 나를 무시하던 이 인간은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공주처럼 살고자 했던 여자는 세월이 흘러 흘러 백골이 진토 될 만큼 고생하여 골병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소재로 떠올랐다.


대놓고 등 떠미는 이 반백살 인간의 꿈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참고로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지만 꿈은 셔터맨입니다.)

사진 네이버, 글 송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