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라면 끓여 줘. 두 개."
아들의 말에 로봇처럼 움직여 라면을 끓일 준비를 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인덕션 버튼을 누르자 아들이 장난치듯 말했다.
"물이 또 한강이네. 엄마 노벨 문학상 받고 싶어?"
물을 잘 못 맞춘다는 타박을 유쾌하게 하는 이 녀석 많이 컸다 싶다. 그 상황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둘이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내일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 날이다.
때맞춰 터진 작위적인 사건을 보는 세계인들에게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오르려고 폼이라도 잡던 내 주식들이 나락으로 갔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왠지 오를 것 같았다. 역시 김칫국은 상상 속에서도 마시면 안 되나 보다.
아마 올 겨울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보내지 못할 것 같다.
글도 못 쓰겠다.
내가 쓰는 보통의 글은 너무 가벼워 이 시국에 내놓기 부끄럽다.
잘못 썼다 용산이든 남산이든 어디로든 끌려갈까 겁난다. 독재에 항거한 문인들, 더 올라가 일제에 항거한 문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난 쫄보라 그리 못 할 듯싶다.
한 번씩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을 떠올린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비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 이 편 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 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 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 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내가 만약 조마리아 여사였다면 안중근 의사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독립운동을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아들의 목숨 앞에서 저리 말할 수 있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계엄이 선포된 그날 5.18 민주 운동 영상을 떠올리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들들이 학생 운동을 하러 가겠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했었다.
누구 때문에 환율이 오르고 내수 경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다. 올라간 물가는 고정된 듯 내려올 줄 모른다. 내년에는 벌이도 줄 것 같은데 덜컥 겁이 난다.
유명 가수에게 뭇매가 쏟아지고 있다.
공인이라고 꼭 정치색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마녀 사냥 식 비판이 도를 넘는 듯하여 안타깝다. 디엠 속 어투 때문에 더 논란이 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연말 약속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도 한 때는 소주만 마시던 사람이었는데 약속이 부담스러운 몸뚱이가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