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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Dec 13. 2024

따뜻한 밥 한 끼가 뭐라고..

애나 키워야 하나

문득문득하는 생각이 있다. 

만약 조물주가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 친다면

그리고 미리 남녀의 역할을 정해 놓았을 것이라 친다면

필시 남자는 가족 부양을 여자는 아이 양육을 맡게 했으리라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시대착오적 헛소리를 한다며 나를 욕할 수도 있다. 왠지 귀가 간지럽다.


아이는 모체에서 분리되지만 분리만 되었을 뿐 줄곧 한 몸 같았다. 젖을 먹이고 안고 재우며 그 뽀얀 살에서 나오는 풋내가 평생 코끝에 남을 정도로 나 인 듯 나 아닌 존재가 내 아이였다.

아빠와 나눌 수 있는 교감과는 별개로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가지는 특별한 감정을 보통 모성애라고 표현한다.

나도 그 모성애 때문인지 여자는 아이를 기르라는 천명을 받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 만큼 아이들은 소중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엄마라는 신실한 양육자가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만 키우지는 못 했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다음은 집에 있기 갑갑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소득도 있고 발전을 거듭하는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업맘들을 끝없이 부러워하는 모순된 생각에 사로 잡힌 인간으로 거듭났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엄마는 아이를 돌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일을 했고 전업 엄마들을 부러워했다.

양육과 일은 언제나 대립되었고 피치 못할 갈등 상황을 수시로 만들어 냈다. 그럴 때마다 애나 키울 걸 하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 일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사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애나 키워야 되나? 하는 우습고도 슬픈 생각을 하곤 한다.


한창 크는 아들들은 하교 후 5시쯤 간식이 아닌 식사를 한다. 그리고 아들들은 바로 학원을 간다. 퇴근 후 나는 사실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빈집 문을 열곤 한다. 아들들에게 미안하지만 쪼금 좋다. 아무도 없는 집 말이다.


나는 보통 그 시간에 아들들이 먹을 수 있도록 출근 전에 도시락을 싸 놓거나, 무언가 만들어  놓거나, 분식을 사놓곤 한다. 가끔은 배달도 이용한다.

지들끼리 라면은 선택이다. 거의 필순것 같기도 하다.


그날도 퇴근 후 반려견만 있는 집에 들어섰다.

아들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출근 전 볶아 놓은 오리 불고기를 데우지도 않고 식탁 중간에 두고 둘이 밥을 퍼서 먹은 흔적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하며 먹었을까? 휴대폰을 보며 먹었을까? 등등 마주 앉아 사이좋게 밥을 먹었을 아들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곧

'다른 반찬도 좀 꺼내 먹지.'


냄비 채 먹다 남은 오리 불고기와 싹싹 비운 밥그릇 두 개만 있는 식탁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애나 키워야 하나 ~ 또 시작 됐다.


대충 챙겨 먹은 아들들의 한 끼 흔적에

내가 챙겨 주지 못한 속상한 감정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싱크대로 향하지 않은 잔반들에 화가 나는 날도 물론 있지만 이렇게 속이 상하는 날도 있다.


일찬에 밥 한 공기를 일상처럼 먹었을 아들들을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아들들로 인해 보통의 일상에도 속상하고 미안함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 따뜻한 밥 한 끼가 도대체 뭐라고...

애나 키워야 하나...



분명 덜어 먹으라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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