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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라이프

편도체의 기억력

by 송주

뷰티풀 라이프

노부부는 인생의 황혼기를 조용히 보내고 있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은 바쁘고 또 어렵기만 하다.

아내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 보다 하루 더 살기로 했던 젊은 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황혼의 인생은 덧없음을 말하듯 홀로 남은 아내의 기억이 과거로 돌아간다.


설레던 시절로 돌아간 그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90분의 공연 시간 내 노부부의 만남부터 죽음까지를 웃음과 눈물로 담아낸 뷰티풀 라이프였다.


프리랜서로 수업을 하고 있는 작은 원에서

올해 마지막 수업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곳 선생님과 새해 인사를 하던 중 대화의 흐름과 별개로 한국인 만의 호구조사 질문을 툭 던져 버렸다.

"샘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 90년생이요. 35...."

'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인 그 90년 생이었다.


아니 근데 한때 핫한 키워드의 주인공이던 90년 생의 일부가 벌써 30대 중반이라니...

나는 그녀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세월이 진짜 빨라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세요."


아빠는 40살 이후부터 세월의 빠름을 체감했다고 했다. 그 말 때문인지 나 역시 그즈음부터 상대성이론이 시간에 적용되는 듯 내 시간이 전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은 것은 희망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하지 못했고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행복한 일은 순간의 격정적 기쁨으로 끝나고 기억과 감정만 희미하게 남았다.

반면 힘들었던 일은 수십 년이 지나도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질질 짜내게 만들었다.


우리의 편도체는 부정적인 감정을 반대의 감정 보다 더 잘 반복해서 꺼내기 좋게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극 속 홀로 남은 아내는 기억을 거슬러 남편을 처음 만난 행복했던 그날로 돌아간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는 좋았던 순간들을 회상하게 되어 뷰티풀 라이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더 잘 기억한다는 편도체의 고유 기능에 충실한 인간으로 살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 보자 다짐했다.

행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그 속에서 작은 성취와 만족을 찾아보는 인생!!

뷰티플 라이프에 단어 몇 개를 더해 보았다.

For my beautiful life



연극 관람 후

식구들과 평범한 저녁을 먹고 탈이 났다.

급체를 할 예정이었는지 이상하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집 주차장에서 먼저 내려 집으로 가야만 했다. 급똥도 모자라 급구토라니.. 가지가지도 정도 것 해야지...

엘리베이터를 탔다. 왜 하필 집이 30층인지..

결국 집까지 못 가고 일이 벌어졌다.


이 기억도 오래 남겠지... 젠장...

남편 왈

"천운이야!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아님 이사 갈 뻔했네."

별개 다 천운이다 싶지만 나역시 같은 동 주민 누구도 엘리베이터에 없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나쁜 기억을 유머스럽게 넘겨주는 장점이 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자책하고 책망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여하튼 누군가 있었다면 30층 아줌마의 더러운 썰이 우리 라인에 다 퍼졌을 수도... 아찔하다. 천운이 맞는 것 같다.


장염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와중에

제주 항공 소식까지 무기력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해 인사가 송구한 오늘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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