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없는 망막 박리
망막 박리 전후의 생활
불행히도 내 오른쪽 망막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 안도할 수도 있는 법
앞서 서술했던 망막 박리의 진행 과정 중 초기라고 할 수 있는 변성이 발견된 것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박리가 아닌 게 어디냐며 스스로 위안했고 또다시 레이저 시술을 하게 되었다.
슬프지만 경험이 있었기에 좀 더 덤덤하게 동그란 의자에 앉아 다시 한번 석고장처럼 몸을 고정했다.
변성이 생긴 위 쪽레이저를 한 후라도 눈이 조금 시리고 따가울 뿐 큰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궁금해하셔서 적어 봅니다.)
나는 진료실로 가 궁금했던 것들을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 질문의 대답은 이미 내가 전 병원에서 들었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망막이 벗겨진 방향이 중력의 힘을 덜 받는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망막은 전체적으로 많이 약한 상태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의사 선생님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의 집요한 질문에도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 주며 환자의 마음을 읽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걱정 많은 이 환자는 망막 박리 때문이 아니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에 파묻혀 질식사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몇몇의 시술 사례를 보여 주었다.
그중 하나는 레이저가 망막 주변으로 360 도 다 둘러져 있는 망막 사진이었다. 아주 젊은 환자라고 하며 여러 가지 경우들이 많다고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 사진은 보고 대뜸 "저래도 잘 볼 수 있어요? 잘 살 수 있어요?"라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잘 보고 잘 살고 있습니다." 하였다.
인간에게 가장 큰 위로는 타인의 불행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그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젊은이의 요새처럼 둘러쳐진 망막 레이저를 보며 파렴치한 위안을 삼게 되었다.
레이저 시술을 한 부분을 점검하기 위해 일주일은 병원에 자주 오갔다. 그 후로는 3달 후 정기 검진이 잡혔다. 만약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병원에 방문하라고 했다.
내가 망막 박리 진단을 받은 것을 주변에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약 먹으면 괜찮아?"
"보이는 건 어때?"
"라식 수술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였다.
약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망막 박리는 약이 없다.
만약 박리가 시작되었고 레이저로 막아지지 않을 정도라면 방법은 수술뿐이다.
내가 처방받은 건 영양제 종류인 혈행 개선제였다.
보이는 건 다행히도 잘 보였다. 망막이 벗겨지다 중심부 황반까지 침범하면 시력 회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내 경우에는 박리 부분이 눈 위쪽이라 시력에는 영향이 없다. 아직 까지는 그렇다.
라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라식 수술은 각막을 깎아 굴절도를 교정하는 수술로 망막과는 관련이 없다.
나는 그 후에도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없었던 내 병을 친한 주변 분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과정을 종종 겪어야 했다.
망막 박리를 발견하고 레이저 시술 후 일상적으로 하던 많은 일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허리 숙여 머리 감기 대신 매일 샤워를 하는 깨끗한 사람이 되었고
요가에서 하는 물구나무서기 나 헬스장 꺼꾸리 운동 기구 절대 하지 않았다.
나는 인체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 맛을 잊지 못해 격하게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망막 박리 후 즐겨하던 수영과 에어로빅도 그만뒀다.
머리 좌우로 흔들기는 액화된 유리체가 출렁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순간적인 힘이 망막을 더 잡아당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놀이 기구 (회전목마 제외)도 일체 타지 않았다. 청룡열차는 당연히 360도 회전하니 무조건 패씽이지만 회전이 없는 비룡열차도 빠른 속도로 커브를 트니 타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적 청룡 열차 인지... 여하튼 청룡 이든 비룡이든 T익스프레스든 별로 타고 싶지도 않지만 이제 타지 못한다.
또 눈을 비비는 행동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했다.
잃어 봐야 소중함을 아는 어리석은 마음이 늘 다니던 수변 공원 초록의 나무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해 왔던 많은 행동들을 하지 않거나 조심하면서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레이저 시술 후 내 시야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