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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같은 여행

이 드라마는 그 드라마가 아녜요

by 송주

고맙게도 구급 대원들은 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라 안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 찾기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한참 후 구급 대원은 진료 가능한 종합 병원이 있다며 말을 걸어왔다. 갈 때는 구급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올 때는 알아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까지의 거리가 차로 1시간이라고 돌아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네비에서 "5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세요."라고 사정을 해도 거리가 가늠이 안되어 입구를 지나치거나 미리 들어가곤 한다.

구글신도 감당 안 되는 인간이 나로 나인셈이다. 하물며 이날 오사카에 처음 온 이방인인 내가...

그리고 만약 아들들 혼자 돌아와야 하면 그때는 또 어쩌란 말인가..


눈은 시급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안과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았다는 반가운 텍스트가 탭에 입력되었다. 숙소와 멀지 않은 곳이었고 지금 있는 곳과도 멀지 않았다.


Osaka Central Emergency Clinic이었다.

병원을 안내받은 우리는 구급 대원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구급차에서 내렸다.

일단 진료라도 볼 수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진료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기에 숙소에서 잠시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갈 계획이었다. 다음 일은 진료 후에 생각하자 끝없이 되뇌었지만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에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저녁도 못 먹고 있는 아들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약해 빠진 엄마를 만나서 외국 여행까지 와서 고생하는 아들들을 보니 늙고 병들어서 아들들에게 이렇게 짐은 되며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복잡해진 머리가 몸의 피곤을 가중시키고 있었고 그렇게 진료 시간이 다가왔다.


나와 아들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내가 제일 첫 번째 환자였다. 접수하기 위해 영사관에 다시 전화해 통역을 부탁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일어 통역관과 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접수대 직원과 한참 이야기를 하던 통역관은 내게 오금 저릴 통화 내용을 전했다.

"망박 박리는 흔한 병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을 상대로는 진료가 안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마치 허들을 넘는 것처럼 산 넘어 산이었다.

접수대 직원은 몸살도 감기도 아닌 망막박리라는 골치 아픈 질환명을 던진 외국인을 퇴짜 놓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만약 진료를 못 보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 일정을 다 취소하고 집으로 가야 하나?

간신히 병원을 찾았는데 진료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은 예상 밖의 시나리오였다.

머릿속에는 걱정과 불안으로 뇌우가 치는 듯했다.


그때 접수대 사무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중년의 여자 직원 한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안다며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와 아들은 귀인을 만난 듯했다.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직원의 도움으로 서류를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료비는 현금으로만 지불 가능하다고 말했다. 난 사실 그 당시에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도 예측할 수 없었을뿐더러 내 지갑에 엔화가 얼마나 있는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현금이 없다고 하면 진료 거부를 당할까 봐 알겠다며 사인을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대기했다. 환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몸살이나 열이 나는 듯 쳐져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멀쩡해 보이지만 응급 센터에 응급 환자로 앉아 있는 아이러니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내 이름이 불려졌다.

진료실은 안과였다. 익숙한 장비들이 눈에 뜨였고 순간 뭔지 모를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탭을 꺼냈다. 증상을 묻기 시작했다. 일어로 말하면 한국어로 번역되어 텍스트가 입력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처럼 눈 안에 산동제를 넣고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다. 산동제 투여 후 40분이 경과했고 동공이 충분히 커진 것을 확인한 후

진료실에서 다시 내 이름을 호명됐다.

눈을 유심히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은 잠시 후

탭에다 진료 결과를 말하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한글로 글자가 쳐지기 시작했다.

"망막 박리는 아니에요."

난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에 동아줄을 잡은 사람처럼 안도했다.


"전에 박리된 부분이 혈관을 건드려 출혈이 생겼어요.

계획한 여행은 계속해도 됩니다."


갑자기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몸이 스르르 녹는 듯했다. 좀 전까지 원망을 쏟아 냈던 이름 모를 신에게 반대로 감사가 터져 나왔다.

혈관이 터져 시야가 흐려진 내 눈 걱정보다 여행을 계속해도 된다는 그 말에 안도의 폴더 인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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