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빗집 개업 후
장사는 꿈꿔 봤지만 갈빗집은 단 한 번도 꿈꿔 본 적이 없다. 나는 개업일이 다가올수록 과연 내 선택이 맞았을지 걱정이 됐다. 가게에 손님들이 들어오면 숨어 버리고 싶을 것 같았다. 가게 시작 전 두려움 마음을 호소한 내게 사업을 하는 친구 스카이가 말했다. '선량하고 진솔하게 하면 된다.' 음... 그건 자신 있었다. 나는 선량하고 진솔한 인간이긴 하다. 그거면 될까? 여하튼 모르겠고 시간은 무심하게 아니 매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개업일은 10월 30일 핼러윈 바로 전날이었다. 이날은 어학원의 가장 바쁜 날 중 하나로 빼도 박도 못하는 야근날이었다. 당연히 학원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그때 지사 팀장님의 전화는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A유치원 스피치 대회, 영어 골든벨 할 예정이라고 애들 준비시켜 달래요." 희한하다. 왜 바쁜 일은 항상 겹쳐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마음은 부산하고 밀려드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전에 공황을 겪고 난 후 나는 복잡한 상황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려 노력하고 있다. 분명 내가 주인공인데 산 넘어 불구경이라 생각하고 심호흡을 해 보곤 한다. 그래야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야? 생각하며 상황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려 한다.
성격상 쉽지 않지만 일이 밀려드는 상황이면 미리 걱정하게 되고 마음이 요동을 치니 정신을 가다듬기가 힘들었다. 거리를 두고 생각해야 분주한 상황에서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개업일이 와 버렸다. 부랴부랴 핼러윈 행사 준비를 마무리하고 가게로 향했다. 오픈날이라 지인들로 가게 안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같이 야근을 한 동료 선생님들과 자리를 잡고 갈비를 먹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에 일단 먹었다. 시댁 어른들도 오시고 갈비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 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감사 인사를 하다 개업날이 다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 후 다시 가게로 갔다. 내 가게라지만 어쩜 그리 어색하던지... 직원 분들께 인사도 드렸다."저는 잘 모르니 지금부터 저를 많이 가르쳐 주세요."라고 인사했다. 사장에게 일을 가르쳐 주는 직원은 없기에 서빙하는 것과 포스기 사용법부터 물어물어 배우기 시작했다.
또 처음으로 돌아갔다. 뭔가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닥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은 나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떨어지는 감만 입에 쏙 들어오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절로 내 입으로 들어오는 감은 부모님의 사랑 말고는 없었다. 그때부터 '난 못해' 보다 뭐든 하고자 사람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살아졌다.
내 걱정과는 달리 갈빗집은 경력 만렙 소유자인 삼촌의 도움으로 무탈하게 한 달이 지나고 있는 중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부산스럽던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다. 지금은 평일에 내 일에 충실하고 주말에 가게로 가 손님을 맞는다. 학부모 상담 기술 중 하나인 친절한 대응이 가게에서 친절한 응대로 바뀐다. 공손하게 손님을 맞는 게 학부모들 상대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에서 친절하고 상냥한 사장으로 변신했다. 처음 숨어버리고 싶던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나는 나름 홀서빙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손님께 "맛있게 드셨어요?" 진심을 담아 묻는다. 내 진심은 손님께도 통할 거라 믿는다. 오픈 빨이 끝났는지 가게는 전처럼 북적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가게에 있어보니 손님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고마울 수 없다. 한 달 내 세 번이나 오신 손님들도 많다. 마음 같아서는 고맙다며 손이라도 잡아 드리고 싶다.
모든 시작은 두렵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나가게 되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해내거나 혹은 해지게 될 것을 알면서도 막상 시작 앞에서는 유독 부정적인 가능성부터 먼저 떠올리곤 한다.
매일 맞는 하루도 새로운 시작이다. 결국 우리는 늘 처음을 사는 것이니 어떤 시작도 두려워하지 말자 다짐해 본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반은 이룬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