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나를 돌보자.
나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그 안정이란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그저 걱정 없이 편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휩쓸리며 살았다. 젊은 시절 나는 또래 집단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했다.
대학생 시절 내게 교직 이수 과정을 신청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알다시피 2년간의 교직 이수 후 실습을 마치면 2급 정교사 자격이 주어진다. 친구들과 함께 신청했고 1년을 수강했다. 그리고 1년을 남긴 시점에 교직 이수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친구들 틈에 껴서 영원히 후회할 각서를 썼다. 친구들 모두 교직 이수를 안 하겠다는데 나만 혼자 그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나오는 건 내게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사실 비난이 두려웠다. 참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내가 강사로 이렇게 오랜 시간 일하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교직 이수 포기 각서는 쓰는 어처구니없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존경보다 조롱을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은 독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집단의 평균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특히 어릴 때 일 수록 비난의 원인을 제공할 여지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갖지 못하는 노력의 결과를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가 열심히 하는 모습과 그 성과는 자신의 부족함을 비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안정을 무리 속에서 찾고자 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관운이 없어 공직에 몸 담지 못할 거란 역술인의 말에 난 운이 없다고 단정 짓고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무관 사주라 공직이나 회사 보다 프리랜서가 맞다고 했다. 젊은 본 사주풀이는 안정된 월급쟁이를 꿈꾸던 내게 다소 좌절스러운 말이었다. 안정의 대명사인 공직이 나와 안 맞다는 불안정한 말에 나는 이왕 안 될 거 대충 공부했고 낙방했고 결혼했다.
그때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했다면 어땠을까? 미련이 남아 40대에 공무원 시험을 쳐 보겠다며 수험서를 사 모으는 돈낭비는 하지 않았겠지?
결혼 하~~~
안정된 결혼생활을 꿈꾸며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결혼은 불안정의 결정판이었다. 로또만큼 안 맞는 남편,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여유롭지 못한 경제 사정, 시댁, 제사 기타 등등 결혼은 안정의 반대인 불안정을 밀도 높게 집약해 놓은 밀실 같았다. 보이는 것과 다른 갈등과 불안의 서사가 겹겹이 쌓인 작은 세계였다. 보통 사람들은 가정을 견고한 울타리라고 비유한다. 나 역시 내 가정이 견고한 울타리가 되길 원했고 무너지지 않도록 그곳에 작은 흠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늘 마음을 세워 두어야 했다. 절대적 노력으로 울타리 안팎을 지켜 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행복은 잠시였고 일상은 계속 이었기에 18년의 결혼 생활은 잔잔한 파도 위를 항해하는 것보다 폭풍 속에 노를 잡고 버텨낸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국 내가 추구하는 안정적인 삶은 허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뒤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안정은 결국 나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외부에서 찾고자 했던 안정은 남을 통해 이룬 모래성이자 쉽게 무너지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흔에 이르러 나는 드디어 벤치에 앉아 책 한 권을 펴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문예장착반 교실에 다시 돌아와 앉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