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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브런치 작가다.

제일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

by 송주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던 퇴마록 화장실에 앉아 보던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나는 소설을 좋아하던 소녀였다. 그렇다고 문학소녀는 아니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 내 첫 동아리는 문예 창작반이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내가 쓴 수필을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읽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무 잘 쓰니 않았니?"

내 어깨는 잠시 하늘로 오르더니 그게 끝이었다.

다만 화장실 변기에서 읽는 책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을 알 만큼 책을 좋아하긴 했다. 소설책을...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 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 속물근성이 몸에 뱄다. 책을 읽는 것과 별개로 돈 안 되는 일에는 별 흥미가 없어졌다.

고로 수녀나 비구니처럼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인생을 살 지 못할뿐더러 안분지족 이런 네 자를 삶의 모토로 삼지도 못할 것 같다. 근처에 있어야 돈을 번다는 단골 내과 선생님의 말씀을 수시로 떠올리며 모닝 주식 창을 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 미국 주식 개장을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퇴직금도 없는 프리랜서 강사의 불안감을 4대 보험 납입하는 직장인은 모를 것이다. 하긴 번듯한 월급 노동자인 남편 역시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니 결국 사는 내내 외줄을 타듯 불안한 것이 인생인가 싶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나이는 속일 수가 없으니 그 또한 불안정에 부채질을 하는 요인이다. 그 결과 쓸데없는 자격증만 늘어나는 중이다. 먹고살 걱정을 이 나이 먹도록 하고 있다. 결국 건강 다음에 문제는 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불혹에 접어들며 더는 사람에 목매지 않게 되었다. 나는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는 일이 힘든 사람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무리 속에 어떻게든 끼어 있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며 40년을 살아냈다. 그리고 불혹에 이르러 무리에서 벗어났다. 나이가 주는 용기라고 해야 할까? 벗어났다의 의미는 무리에 끼고 싶어 내 색깔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내 색깔 그대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유유자적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나를 바로 쳐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외향인이고 싶던 내향인이었다.


아들들까지 중학생이 되었고 내 시간에도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 노느라 그 후에는 먹고 사느라 잠시 잊고 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에 틈틈이 글을 썼다. 누가 본다고 쓰고 부끄러워 지우고 하던 내 글들이 브런치 습작 노트를 가득 채웠다. 제목만 써 놓은 글, 첫 줄만 써 놓은 글도 있다.

2023년 11월 글 세편을 묶어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결심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또 여백을 두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또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실 설마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브런치였다. 이틀 만에 결과가 나왔다. 일하는 도중 합격 메일을 받고 포효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깡충 뛰며 박수를 치고 싶은 것을 유난히 즐거운 수업으로 대신했다.


나는 브런치 시스템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냥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들들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송주'라는 필명을 만들었다. 브런치 연재북이 있는 것도 몰랐고 브런치 북을 만들기 위해 최소 열 번 이상의 글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른 채 막 쓰기 시작했다.

밥도 안 먹고, 엘리베이터에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글을 썼다. 살이 빠지면서 44kg 연예인 몸무게 되었다. 곤란 그 자체였던 뱃살이 들어가는 긍정적 효과까지 경험했다.

나는 전부터 그랬다. 재미있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 뭐든 처음 시작 한 후 급격한 진보를 보이다 흥미를 잃고 정체를 맞는 용두사미의 전형적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운전하면서 떠오르는 문장들에 차를 세웠고 잠들기 전 생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에 메모했다.

지금도 헬스장 자전거 위에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나는 40대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돈 안 되는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내 속의 생각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 글로 옮겼다. 마음이 비워지며 정화되는 기분에 중독되었다. 공감해 주는 독자들의 반응에 용기 얻고 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였다.


얼마 전 <삶은 도서관>을 출간한 글벗 포도송이 ×인자 작가님 프로필에 써진 글귀다.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렇다.


아들들에게도 이르길

기뻐도 슬퍼도 꼭 읽고 쓰라 했다. 아들들은 내 말을 콧구멍으로 들었다. 나는 유튜브에서 시키는 대로 "2호야 그럼 너는 뭘 할 때 제일 행복해?" 물었다. "잘 때"

나는 다시 읽고 썼다. 이 개나리 썅썅바 같은 쉐이키들.. 배 아파 낳고 이렇게 힘들게 키워야 하냐고오오오~~~

이것이 쓰기의 장점이다. 대놓고 못 할 말을 글에서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자명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내는 꿈을 꾸게 되었다.

출간 기획서는 류귀복작가님이 봐주신댔고 홍보도 해 주실 것 같아 (김칫국 드링킹) 꼭 내 책을 출간하리라 다짐해 본다.

노력 끝에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게 되었고 열심히 써서 공모전에도 부지런히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추석에 일이 일어났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꿈꿔 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이 다 같이 좀 만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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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