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넘의 불안
당연한 듯 우리는 아파트 청약에 떨어졌다.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분양권에 당첨되는 게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청약에 떨어질 것에 대비해 플랜 B를 세워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청약 발표가 있던 그날 당첨 여부를 확인 후 바로 플랜 B를 가동했다.
초기 프리미엄에 분양권 사기!
(분양 직후 형성되는 프리미엄을 초기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선호도가 높은 동의 영구조망 고층을 계약했다.
로또 이등 금액에 맞먹는 프리미엄 금액
모두가 우리더러 미쳤다고 했다. 집을 사고 축하의 말 보다 우려의 말을 더 많이 들었다. 늘 내편이었던 친정에서도 이번만큼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나라 일본 이야기를 하며 우리나라도 빈집이 천지가 될 거라고 했다.
지금 사는 집을 팔아도 그 집값만큼의 대출을 내야 하는데 프리미엄까지 얹어 집을 샀으니...
우리가 형편에 맞지 않는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고 보는 사람마다 내게 P를 얼마 줬는지 묻고 놀라는 일상이 반복 됐다.
그들의 질투 섞인 우려에 애써 웃어 보였다.
"사실 시골에 땅 한 백만 평 있어요." 하면 좋겠지만
"호호 빚이 아들들에게 넘어갈 것 같아요."
라며 우스개 소리만 던질 뿐이었다. 하지만 내 속에 불안이 움트기 시작했다. 과연 그 돈을 다 갚아 나갈 수 있을까?
간신히 불안을 잠재우며 나와 남편은 한결 같이 일했고 아이들을 키웠다. 그리고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는 해였다. 우리는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그 해 새로운 공부를 해 보겠다고 사회 복지사 온라인 과정에 등록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하에 돈을 내고 수강 신청을 했다. 그 시작은 위대했으나 일과 육아에 공부까지 병행하려니 몸이 죽어났다.
그 와중에 몸 담고 있던 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가 확장 이전 하며 어학원으로 거듭났다. 이제 어엿한 어학원이 되었고 수업 연령대도 확대되었다.
내 어깨가 무거워졌다. 학원에 맞게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듯 없는 능력도 만들어가며 일을 했다.
입주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부동산에 집을 내놨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약 직전에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살면서 알게 되었지만 사실 우리 아파트는 대지권(토지 소유권) 미등기 상태였다. 워낙에 부동산에 무지했던 나와 남편은 토지 소유권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집을 팔 때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토지권 미등기란?
토지권 미등기'는 말 그대로, 해당 아파트의 토지 지분이 등기부상에 아직 등기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건물(아파트) 등기는 완료됐지만 그 건물이 서 있는 대지 지분(토지권)은 아직 등기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사고파는 것에는 제약이 없지만 내가 결혼 전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안다면 절대 계약하지 않을 것이다.
집을 살 때는 꼭 생각해야 할 게 있다. 그건 바로 집을 팔 때이다.
결국 우리는 분양받은 아파트의 잔금 치를 날짜에 맞춰 그 집을 전세 주게 되었다. 혼자 사는 전문직 여성이라 새집을 새집처럼 잘 쓸 것 같았다.
사전 점검을 갔다. 단지 내 산책로, 작은 폭포 조경, 헬스장, 골프장, 독서실, 샤워실 없는 게 없는 우리의 새 보금자리였다. 단지 전체가 바깥세상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요새 같았다. 평온했다.
아쉽지만 나는 이년 후를 기약했고 살던 집으로 돌아와 변함없는 하루하루 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또 일이 터졌다.
남편 회사인 동쪽 바다 운송 울산 사무소가 없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걱정에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집은 저질러 놨지 애들은 어리지 앞이 막막했다. 남편도 신경이 예민해졌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듬을 어떤 여유도 없었고 날 선 감정에 베이고 상처받기 일쑤였다.
2016년 우리나라 경주 대지진이 일어나던 그해
내 인생도 흔들리는 땅처럼 속절없이 요동 쳤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앓는 소리를 해 가며 사회복지사 이수 학점을 다 채웠다. 실습만 남은 상태였다. 내 실습처는 지역의 미혼모 시설이었다.
바빠진 본업, 집 문제, 사회 복지사 공부, 남편 회사 문제
해결되지 않은 문제 투성이 일상을 보내는 동안
내 안의 불안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피우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미혼모 시설이면 갓난아기들이 많을 텐데 내가 아기들을 돌볼 수 있을까? 아기를 떨어뜨리면 어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불안이 하루 종일 나를 에워쌌다.
(실제 아기를 볼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프로그램 기획하고 예산 관리 등등이 실습의 주였다.)
실습 시작일을 몇 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수업 중에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공황 장애... 그 가스 냄새는 불안이 만들어낸 내 마음 속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