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망설이면 기회가 달아나기도 한다.

눈 감고 베팅

by 송주

결혼 전 남편은 아파트를 한채 분양받았다. 결혼을 한 다음 해 5월 우리는 새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긴 지방이고 그 당시 우리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2억이 조금 안 됐다. 지방에서는 가능했던 분양가였다. 그러니 수도권 독자님들 놀라지 마세요.^^

남편과 나의 내 집 마련 기준은 딱 하나였다.

회! 사! 근! 처

우리 집과 옆 동네 롯데 성 아파트가 비슷한 시기에 분양되고 있던 때였다. 분양가 차이는 3000만 원이었다. 젊은 부부였던 우리의 선택은 한 발짝이라도 주수입원인 남편의 회사와 가까운 곳이었다. 또 단돈 만원이라도 싼 집이었다.


부동산의 첫자도 모르던 우리는 신혼부부 대출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빚을 잔뜩 냈다. 여자들의 로망인 예쁜 혼수 역시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였다. 혼수 마련할 돈도 집값에 몽땅 보탰기 때문이었다. 벌어서 가구를 하나씩 하나씩 장만하며 집을 채워나갔다. 그릇은 가전제품을 사면 주는 사은품으로 마련했고 가전제품도 좋은 것보다 냄비나 청소기 등을 끼워주는 홈쇼핑 제품으로 구입했다. 아이들 옷은 브랜드로 입히지 않았고 나와 남편 역시 갓난아기도 입고 다닌다는 나이키와도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한 채! 어쨌든 34평의 내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것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꼬박꼬박 남편 월급 나오고 나 역시 자리가 잡히는 사이 둘째까지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생활권으로 이사를 계획했다. 그런데 집 값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 집 집값도 심상치 않았다. 꿈틀꿈틀 집값이 시동을 걸듯 오를 채비를 하더니 예열도 없이 수직 상승 했다. 눈뜨면 옆동네 롯데 킹성이 천만 원씩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우리 집값은 요지 부동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방공호에 쌓여 미지의 장치로 덮여있듯 집값은 분양가 그대로였다. 타 아파트가 떨어질 때면 더 떨어졌고 타 아파트가 오를 때도 분양가 이상의 가격을 넘지 못했다.

집이야 내 한 몸 누워 편하기만 하면 되지 라는 내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졌다. 점차 집값은 오르는 시세표의 한 점이 되었고 한 채라도 똑똑한 한 채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 줘 줄 것 같았다.


지방에 평당 분양가 천만 원 시대가 왔다.

남편과 나는 일단 사는 집 탈출을 목표로 신규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들락날락거렸고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포스코 더 올림, 대우 푸지지요, 동원 로열 뭉크 세 개의 아파트가 터를 닦고 분양을 시작한 곳을 둘러봤다.


첫 집에서 살던 때 나는 햇볕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 집은 저층에 뒷동이었다. 가뜩이나 비정상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늘 볕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산다면 무조건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고층에 터를 잡기로 결심했다. 고층이 아니더라도 낮 시간 내내 햇볕을 맞을 수 있는 집을 원했다.

나는 그동안 갈고닦진 않았지만 고이 불입해 온 청약 통장을 활용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했다.

동원 로열 뭉크에 청약했다.

청약 성공

어찌 잘 풀리는 것 같지만 아니었다. 뒷 동 3층 배부른 소리 같지만 난 그 집을 계약하지 않았다.

햇볕, 햇살, 일조 내겐 너무나 절실한 천연자원이었다. 청약이 된 3층은 앞 동에 가려 하루 종일 볕이 들긴 힘든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사를 계획했으니 집을 사긴 해야 했다. 이런 내 뜻은 부동산 이모님들 사이에 널리 널리 퍼졌다.

매일 공인 중개사에서 문자나 전화가 왔다.

"동원로열뭉크 분양권 다수 보유"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이 있기 전 프리미엄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때 마음에 드는 집을 한 채 소개받았다.

39평 3층 P300 만 원 영구조망

영원히 그 집 앞을 가로막을 뭔가는 들어서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끝내 그 집 역시나 계약하지 않았다. 이유는...

"어떻게 집이 평당 천만 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싸서 이제 떨어질 날만 남은 것 같아. 좀 기다려 보자."

이사를 위해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고가의 분양가는 감당해야 할 현실의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일보 후퇴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비웃듯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것도 오르는 곳만 계속 올랐다. 내가 사는 집만 값이 그대로였다. 이대로 있다가 이사는커녕 천년만년 지금 집에서 살아야 될 판이었다.

정책으로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부의 수많은 부동산 정책은 인간의 욕망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나와 남편은 이렇게 된 이상 이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바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듬해 우리가 원하던 조건의 아파트가 분양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 건설사에서 짓는 그 아파트는 슬리퍼 상권이라 불릴 만큼 위치가 좋은 곳에 터를 닦고 있었다. 위치만큼 인프라도 잘 형성되어 있었고 아파트 바로 옆에 초중고가 네 곳이 네모반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그 당시 지역 시민 모두의 관심 목록에 그 아파트가 있었다.

모델 하우스를 둘러본 후 구조며 아파트 내부 시설이며 어디 하나 내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없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백개의 장점을 찾는 법이다. 분양가 1500 만원 근처였지만 우리는 또 한 번의 베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식이든 물가든 집값이든 오르는 것을 선호하더라. 뭐든 오른 가격은 떨어지지 않더라.

떨어지더라도 좋은 건 결국 오르게 되더라. 좋은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하냐고? 수요가 정하더라.


청약이 시작 됐다. 사람들이 똑똑한 한 채를 위해 벌떼처럼 몰렸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청약 경쟁률 430:1



(참고로 제가 사는 곳은 지방입니다. 수도권과는 가격, 인프라 규모 등 여러모로 차이가 많답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