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전쟁의 발자국 - 하경숙 어르신의 두번째 이야기
[이 글은 2024년 11월 15일 실향민 하경숙 어르신 인터뷰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84세의 하경숙 어르신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평화로운 어린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함흥 역전 문화여관의 자줏빛 마루 위로, 흙 묻은 군홧발이 들이닥쳤습니다. 두툼한 누비옷에 귀덮개 모자를 눌러쓴 꼬질한 중공군들. 신발을 벗고 들어서야 할 안방에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 총칼을 든 불청객들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여관을 휘저었습니다. 어린 하경숙의 6. 25전쟁은 그렇게 무례함과 불쾌함으로 시작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중공군이 우리 여관으로 들이닥치는데, 그 추운 겨울에 더러운 신발을 신고 수십명이 아래
위층을 쑤시고 다녔어요. 사람이 숨어 있나 찾는다며 그 깨끗한 안방이며 손님방까지 총을 들고 헤집어 놓
는데...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지. 그러다 로스케(소련군)라는 사람들이 오면 또 집집마다 구석구석 여자가
있나 찾으며 총칼을 내밀었어요. 등이 오싹오싹할 정도로 무서웠지. 그럴 때면 우리 할머니는 나를 꼭 붙들
고 밖으로 못 나가게 하셨어. 대여섯 살 먹은 내가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나는 이날까지도 중국 쪽으로는 고
개도 안 돌려요."
전쟁이 깊어지자 공습 사이렌은 일상이 됐고, 어린 소녀는 방공호의 어둠 속에서 북소리처럼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습니다.눅눅한 지하 공기, 옆 사람과 촘촘히 살을 맞대고 있어도 가시지 않는 냉기는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낯선 세상이었습니다.
땅 위로 포탄이 떨어질 때면 방공호 천장에선 차가운 흙가루가 쏟아졌습니다. 다섯살 경숙은 외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생명줄처럼 움켜쥐었습니다. 그때 스며든 공포는 평생 가슴 밑바닥에 딱딱하게 눌어붙은 누룽지처럼 남았습니다. 여관 손님들의 도란도란한 이야기꽃이 피어나던 평화로운 아침은, 그렇게 땅을 뒤흔드는 폭음 속에 속절없이 바스러졌습니다.
1950년의 겨울, 함흥 시내에 콩볶는 것 같은 총소리가 이어지자 외할머니와 두 이모는 피난을 결정했습니다. 서둘러 꾸린 피난 보따리를 들고 무연탄가루 날리는 화물 열차에 몸을 실어 닿은 곳은 흥남 부두였습니다. 땅을 울리는 포성은 이미 턱밑까지 쫓아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가까워지는 죽음의 소리를 들으며 배에 오를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자주색 마루 위로 쏟아지던 햇살은 이제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섯 살 소녀의 눈앞에는 오직 시커먼 밤바다와 날카로운 눈보라, 그리고 살기 위해 뒤엉킨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뿐이었습니다.
본 연재물에 사용된 이미지는 하경숙님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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