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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담 Feb 05. 2022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이직'이 아니다(3)

마주한 페르소나, 더해진 확신

당신이 지금 원하는 것은 '이직'이 아니다(3) - 마주한 페르소나, 더해진 확신




“두담 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




상담사의 밝은 인사와 함께 상담이 시작됐다. 잡 컨설팅 사이트를 통해 너무 급하니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상담을 잡아달라 요청했었다. 잡 컨설팅에 대해서는 아주 최근에 알게 됐다. 어느 날 알고리즘이 나를 ‘커리어 엑셀레이터’의 강의로 이끌었고, 나는 영상 시청 후 바로 상담을 예약했다. 신청 후 일주일만에 첫 상담이 시작됐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어도, ‘새해 복 많이 받았냐’는 인사말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찰나의 생각을 뒤로하고 상담사와 같은 톤으로 나 또한 인사를 건넸다. “네 상담사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할말이 번뜩 떠오르지 않을 땐 상대방의 표정을 따라 짓고,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게 나의 사회생활 습관이었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사전에 제출한 검사지를 토대로 나에 대한 분석이 시작됐다. 처음 나눈 인사도 테스트의 일부였다. 상대방에 대해 어떻게 호응하는지, 그 정도와 모습에 따라서도 성격 특성을 알아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상담에 돌입하자 내 눈앞에는 하나의 장표, 그리고 두 개의 그래프가 나타났다. 총 5개의 항목에 따라 두 그래프는 서로 다르게 흐르는 모양새였다.


첫 번째 그래프는 내 본성에 대한 그래프였다. 리더십, 공감능력, 자기 표현력 등 항목별 점수를 통해 타고난 성격특성이 보였다. 이 '본성 그래프' 아래로 흐르고 있는 선은 ‘사회적 자아’였다. 타고난 기질과 별개로 사회에서 내가 비치는,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어떤지 두 번째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상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이점이다. 본래의 자아 성향과 사회화된 자아 성향을 동시에 비교분석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두 그래프를 비교할 때 점수 차이가 꽤 많이 나는 구간들이 발생하는데 이런 구간에서 현재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개선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예를 들면 나는 타고난 리더십 점수보다 사회화된 자아의 리더십 점수가 조금 낮은 편이다. 본성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오랜 시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이 따라주지 않자 ‘답답함’, ‘지루함’, ‘불안함’과 같은 감정이 짙게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내가 원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상황을 싫어하고, 어떤 상황들을 즐기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해 한층 깊게 알고 나니 ‘이 방향이 맞을까? 누가 나 대신 결정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확신과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은 즐겁게 하고, 어떤 일은 피하고 싶었는지 ‘아다리’가 맞아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왠지 모를 위안과 안도의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 한구석에 작은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열심히 해야 하는데 왜 자꾸 이런 생각들로 멈추고 불평하게 되는 걸까’, ‘왜 이것저것 시도만 많이 하는 걸까 제대로 끝맺음도 못하면서’하는 등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상담 후 나의 성향으로 미루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과정이었음을 인지하면서 그 감정은 아주 작아져 갔다.



그렇게 나에 대해 좀 더 알고 나니 마음의 문이 조금 열린 듯했다. 표면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아닌 그 문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바람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그 문 안으로 보이는 것들을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났다. 곧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자아가 회사에서 묵묵히 맡겨진 일을 쳐내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기간이 10년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자아가 머리를 든 것이었다.



“10년이야 벌써, 지금 잘하고 있어?

지금도 성장하고 있지?

어딜 가든 너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있는 거지?”



나는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없어 답답했고, 불안했고, 짜증 났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그 어떤 상황으로. 그래서 가장 만만하고 쉬운 단어인 ‘이직’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기회이자 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나의 나이, 상황, 커리어, 거의 인생 전반에서 이직이 주는 가치가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오해가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란 것은 몇 종류의 확신이었다.



그 첫 번째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확신’의 팔 할은 나의 몫이었기에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해내야 했던 일들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건 어디에서든 내 마음먹기에 다른 거라고, 환경을 탓하기 전 내가 주도적으로 최선을 다해 도전해 봤는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내가 바라던 것은 ‘내가 누군가를 확실하게 도울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지난날 나는 이 바람을 ‘타인에 의한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특정인의 ‘칭찬’과 ‘인정’. 그리고 그가 나에게 보이는 ‘만족감’을 갈구해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해왔음을 깨달았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 자신이 어디서든 확실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스스로 갖고 싶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연히 5년 전 처음 이직했던 시절의 일기를 발견했다. 이런 문장이 쓰여있었다.



'멋진 사람들과 하는 새로운 경험은 늘 옳다’



당시 이전 직장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광고 촬영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전에 본 적 없는 연예인을 연달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의미 있고, 배워나가는 기분에 힘든 줄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일이 익숙해지자 의미는 옅어지고 힘든 줄만 아는 사람이 되버린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다시 새로운 경험들을 찾아야 할 때였다.



이렇게 나의 속마음을 읽고 나니 늘 목놓아 부르짖던 연봉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단순히 높은 연봉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지는 확신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주체를 ‘나만 제외한 모든 것’에 두고 있었다. 그러니 직장도, 연봉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뭐하나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인정하는 주체도, 나를 결정하는 환경도 그 모든 관점이 내 밖에 있는데 어떤 결정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곧 모든 것들이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편 투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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