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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Nov 28. 2023

환자가 부추기는 과잉 진료


60대 안면마비 환자가 내원하였다.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일반적인 안면마비이기 때문에 검사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찝찝한 마음에 비급여라도 찍고 싶다고 하여 이미 MRI와 CT를 찍었다고 했다. 연세도 좀 있고 고혈압이나 뇌동맥류 등 질환도 있어 불안한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경우가 임상에서는 매우 많다.     


병원에서 검사가 필요 없다고 말해도 환자가 계속 검사를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하고,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도 증상이 계속된다며 같은 검사를 여러 번 받는 경우. 바로 환자의 요구나 욕구에 의한 과잉 진료의 단면이다.     


pixabay.com

과잉 진료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병원이나 의사에 의해 일어나는 과잉 진료나 의사의 방어적인 의료 행위로 인한 과잉 진료도 물론 존재하지만, 요즘은 환자들의 요구 때문에 생기는 과잉 진료나 언론이나 매체에서 부추기는 과잉 진료가 많은 편이다. 굳이 검사를 더 할 필요가 없는데도 환자가 계속 원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검사가 진행되고, 여러 매체들에서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조금만 증상이 생겨도 과도하게 의료를 이용하려고 한다.   

  

처음 소개한 안면마비의 경우도 대부분 증상만 봐도 벨마비인 경우가 많고 MRI 촬영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지만, 환자들은 처음 겪는 증상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강하고 의사의 만류에도 억지로 검사를 요구하게 된다.     


환자들은 허리가 조금만 아파도 X-ray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MRI를 찍고 싶어 하고, 가슴이 조금만 아파도 심전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 초음파나 할 수 있는 검사은 다 하려고 한다. 허리가 아픈 원인은 다양하지만 만성인 경우 대부분 디스크나 협착증 등 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MRI를 찍든 안 찍든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후 관리에 있어서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고, 심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면 당연히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권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환자 스스로 불안해서 각종 검사를 다 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조금만 위장이 아파도 몇 달 전 이상이 없었던 위내시경을 또 하려고 하는 경우, 머리가 조금만 아파도 머리에 이상이 있나 싶어 반복적으로 CT를 찍으려고 하는 경우, 조금만 어지러워도 MRI를 찍으려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매체에서는 흥미를 끌기 위해서 심각한 경우를 위주로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에 본인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님에도 ‘혹시 위장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뇌출혈이 생겨서 머리가 아픈가? 뇌경색이 생겨서 어지러운가?’라고 쉽게 자기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어찌 보면 한국의 의료적 특성이나 기질도 이를 부추기는 것 같다.     

 

조금만 나가도 병원이 있고, 검사해 달라고 하면 검사를 받을 수가 있고, 비용도 얼마 하지 않고, 불안감은 높고, 뭐든지 빨리 해결하고 싶고, 완벽하게 하고 싶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조금만 아파도 동네 의원이 아니라 대학병원의 저명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고, 월요일까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감기에 걸렸더라도 큰 병원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물론 의료는 서비스업에 속한다. 소비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고,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의 서비스는 공적인 세금에 의해 충당되는 면이 많다. 소비자가 원한다고 무한정 제공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들이 똑똑해져야 한다. 넘쳐나는 의학 정보를 가릴 수는 있을 정도의 지식과 지혜는 최소한 가져야 한다. 의사가 적절한 의료적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에 맞게 소비할 줄 알아야 한다. 과도하게 검사를 요구하거나 본인의 불안감을 검사로 채우려는 욕구는 증상이 달라지면 또 다른 검사를 해야 하고, 증상이 지속되면 같은 검사를 반복해야 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검사’가 될 가능성이 많다. 검사를 한다고 치료가 되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검사를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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