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출장을 다녀왔다. 언제 마지막으로 갔는지 생각이 잘 안 날 만큼 서울에 간지 오래된 것 같다. 전날에 갑자기 일이 잡혀서 열차를 알아보니 전부 매진이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예매했다.
다음 날 아침에 잠깐 출근했다가 급하게 공항으로 갔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설렘을 마음 귀퉁이에 조용히 모셔둔 채 출국장에서 노트북을 켜서 발표 준비를 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다 시간도 없고 너무 올라버린 물가에 조용히 5천 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서울에서 산 지는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사람들로 북적한 도시. 출퇴근 지하철은 항상 만원이었고, 마지막에 타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몸으로 밀며 들어가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 있어 서울은 청춘의 시작,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그야말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급행을 타고 강남 한가운데 떨어졌고, 회의 중간에 들어가서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회의가 길어지자 초조하게 비행기 시간을 체크했다. 나의 발표 순서가 되었고, 나는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말들을 쏟아 내고 질문을 받고 조용히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밖을 나오자 이미 도시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밖은 꽤나 쌀쌀했고,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꽉 막힌 도로를 보자 ‘이곳은 서울이구나.’라는 감각이 돌아왔다. 버스 두 정류장의 거리를 가야 했는데 택시나 버스를 타서는 도로에 꼼짝없이 갇힐 것 같아서 튼튼한 두 다리의 빠른 걸음을 택했다. 차들과 사람들 그리고 빌딩들 사이를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지하로 들어가니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승강장을 가로로 꽉 메우고 있었다. 지하철이 한 대 왔는데 역시나 줄을 선 사람들은 다 타지 못했고, 맨 마지막에 타려는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들을 욱여넣고 있었다. 2023년인데 아직도 서울은 지하철을 저렇게 타고 있구나.. 10년 전과 전혀 바뀐 것이 없는 서울의 모습이 짠했다. 다음 지하철이 와서 겨우 탔는데, 뒤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압력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지금 서울에 살고 있었더라면,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왔을 것 같았는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것이 일상인 듯 무표정했다. 나도 아마 예전에는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서 살아보니 그것이 당연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서울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회사도 직장도 일자리도 서울에 많을 것이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계속 서울로 모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구조.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 있다. 서울을 오래 벗어난 나에게 서울에서의 하루는 나를 한순간에 무력한 도심의 시민으로 만들었다. 아니,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를 것이 없는 소시민의 삶. 밀리면 밀려 들어가야 하고,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밀고 들어가야 하고,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서서 다음 정거장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도시민의 삶. 오늘 진행됐던 회의와 발표는 온데간데없고, 지하철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사람들의 압력만이 내 몸에 기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