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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Dec 12. 2023

학생들과의 FGI 연구

를 가장한 팬 미팅


MBTI I(내향) 성향의 교수에게 학생들과 친해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강의가 있어도 강의만 하고 나오고 학생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옆에서 이야기해 주지 않는 이상 학생들의 반응도 모른다.     

몇 달 전 연구 조사를 위해 학생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일종의 양적 연구였는데 이번에 그 후속 연구로 질적 연구를 해야만 했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 FGI)라고 부르는 질적 연구로 집단심층면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연구책임자이긴 하지만 E(외향) 성향의 교수가 떠넘기듯이 시켰기 때문에(?) I(내향) 성향의 교수(나)가 연구책임자가 된 것일 뿐이다. 어쨌든 그 연구 때문에 학생들과 가까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7명이 모인 자리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인터뷰에서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은 다양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고, 학생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고 드디어 I 교수가 부담스러워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E 교수는 일이 있다며 먼저 가 버렸고 7명의 학생들 앞에 I 교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학생들은 나의 나이를 묻기도 했고, 왜 교수가 됐는지 교수가 원래 꿈이었는지 물었다. 실제 나이를 처음 들은 학생들은 깜짝 놀랐고, 교수가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니 눈을 반짝였다. 여행을 다닌 곳 중에서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아이슬란드라고 대답했다. 어떤 가수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김동률과 김광석을 꼽았다. 20살에 ‘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다녔다고 대답해 주었다. 학생들은 나의 대답이 재밌는지 계속 물어왔고, 나는 내향형 특유의 부끄러움과 어버버함으로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학생들과 인터뷰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단심층면접이었지만 I 교수에게는 마치 질적 연구를 가장한 팬 미팅과 같았다. 인터뷰에 지원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나를 좋아하는 학생들이었고, 수업 시간에도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수업만 하고 나오는 교수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나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이미 기억에 각인되어 있었고, 학생들은 작년 수업 시간에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들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수업이었는데 학생들은 재밌게 생각하고 있었고, 오히려 보너스로 학생들이 진솔하게 쏟아내는 다른 교수들의 욕(?)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나의 위치를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고, 내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논문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아주 신선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이고 내가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나를 좋게 생각해서 이번 인터뷰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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