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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Dec 19. 2023

그럼에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놓기 어려운 이유

      

일전에 ‘MZ 세대 교수의 단점’을 글로 적은 바가 있다. 조회수가 높았기 때문에 이를 영상으로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부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왜 그렇게 댓글에 날이 서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취지는 ‘당연한데 왜 불만이냐.’ ‘하는 일 없이 돈만 받아 가지 않았냐.’ ‘누칼협’ 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심화된 버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를 그만두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 말해 보겠다.     


(이건 학교마다 다르고, 교수 직책에 따라 다르고, 같은 학교라도 학과마다 교수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첫째, 명예나 권위가 예전보다는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은 살아있다.  

    

나는 명예나 권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놓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은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 와이프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쉽게 놓을 수 있어도 와이프는 쉽게 놓지 못했다.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든 나를 그만두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 부모님이나 처가에서는 어떨까? 말은 해보지 않았지만 말릴 것이 뻔하다. 교수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소득이 적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편에 속한다.     


교수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젊은 연봉제 교수들의 경우 그만두고 나가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월급을 받고 있다. 일의 양도 교수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 하는 일에 비해 돈이 적다. 일이 너무 많았을 때 번아웃이 와서 그만두고 싶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가서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적고 꾸준히 월급이 들어오기 때문에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일반 직장인들이 번아웃이 와서 그만두려고 하면 이해를 해 주지만, 교수가 번아웃이 와서 그만두려고 하면 사람들은 잘 이해를 해 주지 않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셋째, 교수 사회 내의 꼰대 문화가 남아 있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내 주위에는 꼰대 문화가 비교적 덜한 편이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꼰대 같은 교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교수는 교수인 것이 다른 회사였으면 꼰대나 고인물 같은 상사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그만두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교수는 그나마 기본적인 대우는 받는 편이다. 교수 사회의 꼰대 같은 모습 때문에 나오고 싶어도 대부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기 때문에 1인 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나와서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문화가 많이 나아졌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넷째, 호봉제 교수보다 연봉제 교수의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연구 실적이 좋거나 승진이 빠르다면 해볼 만하다.     


호봉제 교수들은 실적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매년 호봉이 올라가고 퇴직을 하면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중간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봉제 교수의 경우 눈에 보이는 점수가 좋지 않으면 월급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서 그만둘 확률이 높다. 나는 다른 일이 많아서 연구를 할 시간이 별로 없고 연구에 특화된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실적이 그리 좋지 못하지만, 연구 실적이 좋거나 승진이 빠르다면 다른 단점들을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요즘은 지방 대학의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실직이 아쉬운 교수들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        

  


다섯째, 그래도 교수의 장점은 남아 있다.      


많은 교수들이 장점으로 꼽는 것이 방학이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조건이고 방학 때도 일을 계속하는 교수도 많지만, 단순하게 생각해서 12개월 중에 4개월을 쉬면서 월급을 받는다면 적어도 1.5배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계산이 맞나?..). 그리고 (이것도 나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지만..) 강의 시간 외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도 그런 장점이 아쉬워 그만두지 못하는 교수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그럼 나에게는 무슨 장점이 남아 있을까..).    



      

교수도 직장인이다. 학교라는 기업의 돈을 벌어다 주는 직장인. 힘들어서 번아웃이 오거나 갑자기 연구실에서 숨이 안 쉬어지면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이 맞는 직장인. 내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의미가 없다고 여겨져도 그만둘 수 있고, 돈이 중요한 사람은 돈을 좇아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되는 직장인. 학교에게 갑질을 당하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허탈해지기도 하고, 같은 교수들에게 시달리면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직장인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그만두면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아무리 회사의 임원이라도 회사를 나오면 일반인이 되는 것처럼 쉽게 없어지는 교수라는 타이틀. 그만두려고 하면 가족들이 반대하여 그만두지도 못하는 마치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 같은 교수의 위치. 한번 들어가면 정년을 할 때까지 다녀야 할 것 같고 막상 월급표를 까면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 공무원 같은 교수의 직급.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기는 쉽지만 다른 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퇴사를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교수의 신분인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에 단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교수라는 타이틀을 놓기는 그래서 쉽지 않다.



https://brunch.co.kr/@saltymarker/9​​


https://youtu.be/UyigyF9JDMU?si=0i6CnvmLFGjwJpoe​​


* 그림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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