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헤어지려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다툰다는 것은 헤어지려는 결심을 마치지 못한 상태라는 것.
진짜로 죽고 싶은 사람은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소란을 피운다는 것은 자기를 봐 달라는 것.
오늘 회식을 했다. 사람들은 직장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쏟아 냈지만 나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것은 직장에 대해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았다는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만도 생기고, 건의도 해 보고, 잘해 보자고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는데,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 여차하면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퇴근할 사람처럼, 누군가 붙잡아도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붙잡은 손을 슬며시 놓을 사람처럼 미련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옆 직원? 상사? 직장의 시스템? 사회? 아니면 나 스스로?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해 봐야 나만 피곤할 뿐이다.
연인들이 서로 싸운다는 것은 아직 감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싸우지도 말을 하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서 떠날 뿐이다. 스스로 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죽을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아직 삶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떠난다.
나도 직장에 대해서 그런 감정까지 와 버린 것일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직장은 그만두어도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 연인은 헤어지면 그뿐이고, 죽는 사람은 죽음으로 끝이지만, 직장은 그만둬도 다른 직장을 구하거나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지 않는 것일 뿐 미련이 있어서 다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회식을 하다가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면 직장에도 나에게도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렇다고 오늘 당장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도 실패했다. 직장에 미련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속물적 실패. 회식을 하면서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테지만 마치 나만 알고 있는 비밀처럼 그렇게 혼자 말없이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