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에 대하여
오랜만에 카페에 왔다. 주말 아침, 경치 좋은 바닷가에 자리한 조용한 카페. 예전에 혼자 살았을 때가 생각난다. 조그만 원룸에 살았을 때 주말에 집에 처박혀 있기 싫어서 주말 아침이면 근교 조용한 카페에 가곤 했다. 카페 한쪽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외로운 날이면 외로운 글을, 그리운 날은 그리운 글을, 한가한 날은 한가로운 글을 쓰곤 했다.
혼자 사는 것과 결혼하여 둘이 사는 것은 좀 다른 것 같다. 혼자 사는 것은 빈 공간이 많다. 밥을 먹을 때도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실 때도 빈 공간이 있다. 빈 공간이라는 것은 좋은 의미일 수도 안 좋은 의미일 수도 있다. 마치 그림의 여백처럼 좋고 나쁨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조용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 빈 공간은 좋은 것이다. 생각할 여유가 있고, 편하게 휴식할 수도 있다. 반대로 너무 외롭거나 쓸쓸한 경우 빈 공간은 조금 힘든 일일 수도 있다.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서 뭔가를 해도 잘 채워지지 않고,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낄 뿐 별다른 방법이 없이 시간이 가기만을 바랄 수도 있다.
둘이 살게 되면 빈 공간은 줄어든다.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 누군가가 공간을 차지한다. 둘이 잘 맞는다면 공간이 채워진다는 것은 풍성함과 연관된다. 외로움을 느낄 빈 공간이 줄어들고, 경험을 함께 나누기 때문에 공허함이 덜하다. 하지만 둘이 잘 맞지 않고 트러블이 계속 생긴다면 빈 공간이 줄어드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된다. 이럴 때는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될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빈 공간이 줄어들었다. 혼자 카페에 가거나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거나, 혼자 여행을 가거나 집에 혼자 있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집에 있어도 둘이 같이 있고, 여행을 가도 함께 간다. 정신적으로는 좀 더 풍요로워진 것 같고, 외로움은 없어진 것 같고, 무엇을 해도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에 공허함이 덜하다. 시간적으로는 잡생각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무언가를 먹거나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의 관심사와 와이프의 관심사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에 비해 색깔이 다양해진 느낌이다. 마치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생기듯 삶의 밝기도 달라졌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좀 더 나아진 느낌이다.
오늘은 '와이프와 함께' 카페에 와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마치 혼자 살 때 카페에 온 것처럼 그런 느낌도 조금은 있다. 이것은 마치 둘이 사는 장점과 혼자 사는 장점을 합쳐 놓은 기분이다. 함께 카페에 와서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기도 하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닐까. 그러다가 드라이브를 할 때는 다시 함께 노래도 듣고 경치를 보면서 경험을 공유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