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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Dec 29. 2022

착하게 살아야 할까?

-착함이라는 믿음

착한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 - YouTube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에 근거한 이야기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았으면 좋겠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반대로 말하면 착한 사람인데 복을 받지 못하고, 나쁜 사람인데 벌을 받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거부 반응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한 사람이 되라고 배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은연중에 그것이 맞다고 가르친다. 동화책을 봐도 나쁜 사람은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착한데 복을 받지 않고 나쁜데 벌을 받지 않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나쁜 사람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착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할까? 세상은 착한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다. 연애를 할 때도 착하게 대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다. 직장에서도 착한 것 같으면 직장 동료들은 그 사람을 부리려고 든다.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도 착하게 생겼다 싶으면 만만하게 보고, 착하게 말하는 사람은 화를 내는 사람에게 순번이 밀려 마냥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다. 현실에서 볼 수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관. 예나 지금이나 착한 사람이 더 피해를 보는 것이 현실이지만,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일종의 ‘종교적 믿음’ 또는 ‘종교적 환상’. 동물의 세계를 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생태계에서는 그런 믿음이 통하지 않는다. 착하게 굴면 포식자의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이 동물의 생태계다. 세상의 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착함의 믿음을 가지고 포교 활동을 펼쳐도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고, 그 착함의 믿음은 순수함에서 시작됐지만 비극으로 끝마치게 된다. 믿음이 강할수록 허탈감은 심하고, 그 허탈감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바뀌게 된다.     


처음부터 착함의 믿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릴 때부터 ‘착한 사람도 피해를 볼 수 있고, 나쁜 사람도 잘 살 수 있다’는 현실을 이야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환상이 깨지는 아픔을 겪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세상은 원래 냉정한 것이며, 착하다고 해서 복을 받고 나쁘다고 해서 항상 벌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세상에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대처할 줄도 알아야 하고 마냥 착하게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그런 사실을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 커버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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