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담이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일본에도 같은 속담이 있고, 영어권에도 “폭풍 뒤에 고요가 온다, 고통 뒤에 기쁨이 온다.”는 비슷한 속담이 있다.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리고 힘들지만 땅이 마르고 난 뒤에는 비가 오기 전보다 더 단단해지듯이,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오히려 겪기 전보다 한층 더 성장하고 강해진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속담은 귀납적 추론으로 형성된다. 즉, 힘든 일을 겪고 강해진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 사례들은 많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땅이 굳어지기는커녕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이 떠내려가기도 하고, 한 해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기도 하고, 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가랑비만 내려도 두려움에 떨게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믿었다. 힘든 고비를 겪어야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든 고생도 사서 하려고 하고, 더 아파 보려고 하고, 좋은 경험이든 안 좋은 경험이든 더 많이 하려고 했다. 이것은 마치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면 뼈가 부러지지 않은 사람보다 나중에 뼈가 더 튼튼해질 것이라는 논리와도 비슷하다. 가슴 아픈 이별을 많이 겪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져서 나중에는 이별을 겪게 되어도 잘 넘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육체는 한번 손상을 당하면 손상을 당하기 전보다 안 좋아진다. 손상에 대한 상처가 남고, 후유증이 생기고, 기능은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떨어진다. 전보다 단단해지기는커녕 더 약해진다는 의미다.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를 겪고, 상심이 크고, 우울증을 겪으면 나중에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취약해진다. 예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와도 잘 넘어갔지만 점점 더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작은 일에도 불안하고 나약해진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비가 와야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느 강도의 힘든 일을 겪어야 더 성장하는 것일까?
후유증이나 트라우마, 우울증이 생기지 않을 정도가 좋다. 운동으로 생긴 근육통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고 오히려 힘이 생기듯이 내가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고통이 좋다. 마치 감기에 걸리면 1~2주 아프다가 낫고 항체가 생기듯이 몸이 회복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이 좋다. 만약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삐끗하여 인대에 손상이 가거나 뼈에 금이 가는 정도라고 한다면 땅이 단단해질 정도의 비가 아니라 땅을 못 쓰게 만들 정도의 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단순 감기가 아니라 폐렴이나 천식이 생겨 호흡에 문제가 생길 정도라면 땅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약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단단해질 정도의 가벼운 일이면 괜찮을 수 있지만, 스스로 무너져 내릴 정도의 힘든 일을 겪고 있다면 옆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워 줄 필요가 있다. 힘든 일을 겪고 약해진 사람이 있다면 더 강해지도록 다그칠 것이 아니라 '약해진 땅으로 잘 살아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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