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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Oct 21. 2022

나는 자연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자연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부터 나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꿈꾸곤 했다.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두 다리로 걷고, 두 팔로 일하고, 돈이나 문명의 편리함을 좇지 않고, 자연에서 살고 싶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배낭 하나를 메고 세계 곳곳을 다니는 일도, 아무도 없는 암자에서 홀로 수행하는 삶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에 몸을 싣고 사는 일도 꿈꾸곤 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졸업을 하여 직장에 다니고,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여 사는 동안 내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일, 관계에 치이다가 어느 순간 사람이 싫어지는 일 등.. 세상이 싫어지는 일을 겪다 보면 다시 자연으로 떠나려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일편으로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게 된다. ‘남편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본다면….’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있다. 하나. 산이든 바다든 도시와는 떨어진 외딴곳에서 산다. . 건강 악화, 사업 실패,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자연으로  이유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 홀로 살기 때문에 외롭지만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리고 덤으로 주인공은 여자도 있지만 남자가 대다수이고, 경상도 쪽에 산이 많아서 그런지 경상도 말투의 자연인이 많은  같다(?).

      


    어쨌든 나도 자연인을 보면서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꾸었다. 도시 외곽에 땅을 보러 부동산에 돌아다닌다든지 좋은 땅을 고르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였고, 경제적인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도 하였다. 와이프에게도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와이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아직 자연인이 되기에 무리다.’였다.



    자연인이 되려면 먼저 내가 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하는데 땅을 구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자연인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기 땅을 가지고 있었고 몇몇의 사람들 빼고는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 하더라도 땅을 살 정도의 돈은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은퇴 후에 연금이 나오는 등 생계 수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남은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없고, 연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자연인을 하려면 아직 돈을 더 벌어야 했다. 물론 자연에서 농사를 짓거나 내 재능을 가지고 수입원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파고 들어가다 보면 현실의 벽에 막히는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나도 어릴 때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인의 생활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미 내 몸은 몇십 년 동안 도시에 적응되어 자연의 삶이 불편해져 버린 것이다. 365일 따뜻한 물에 씻을 수 있는 목욕 시설이며 컵만 가져다 대면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오는 정수기, 조금만 가면 마트가 있어서 술이든 라면이든 사 먹을 수 있고,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고기도 돈만 주면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안락한 침대와 벌레 걱정 없는 생활 공간은 나도 모르게 도시인으로 길들게 했다. 한 번씩 주말에 자연으로 가는 것은 좋지만 거기서 평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락한 침대와 벌레 걱정 없는 생활 공간은 나도 모르게 도시인으로 길들게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자연인의 삶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좋은 점은 있었다. 막연히 일을 그만두고 산으로 가고 싶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고 스스로 멈추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생활이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도 도시에 사는 이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도시가 정답은 아니다. 요즘은 사람이 도시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인류가 도시에서 살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도시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신 그에 대한 대가도 분명히 요구한다. 우리는 편한 것,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이 삶을 멈출 수가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받아야 하고, 건강이 악화되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도시가 싫어질 때 망가진 몸으로 자연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 사진 - 사이드 미러에 비친 동녘의 아침 노을.


그리고 언젠가 도시가 싫어질 때 망가진 몸으로 자연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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