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기호는 사라졌는가-가설 2

제1장 감각의 귀환과 실험을 향한 서문

by 사유의 풍경

책은 언제나 계획대로 읽히지 않는다.

한 책은 다른 책을 부르고,

또 그것이 새로운 문을 여는 독서를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괜히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을

다시 만나게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 천국과 지옥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 채,

한 책의 각주에서 인용된 또 다른 책을 따라가는 독서,

사냥하듯 읽어 내려간 독서의 연쇄작용은

전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그리고 이 책이 나를 덮쳤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솔직히 말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제목도 기묘했고,

표지 디자인도 오묘했으며,

내용은 더 묘했다.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펼쳐지는 건

환각제, 메스칼린, 그리고 이상한 시각적 체험들.

중간쯤 읽었을 땐 진심으로 책을 덮고 싶었다.


‘이게 무슨 약에 취한 소리인가’ 싶었고,

‘내가 왜 이런 책을 읽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가가 바로 『멋진 신세계』의 저자
그 올더스 헉슬리였기 때문이다.

* 올더스 헉슬리

올더스 헉슬리, 출처: wikimedia
올더스 헉슬리(1894~1963)는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사상가로,
미래 사회의 인간 소외와 통제를 비판한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예리한 지성과 풍자, 철학적 통찰로 현대 문명과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았다.

헉슬리는 과학, 종교, 인간의 자유와 행복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작품들은 사회적·철학적 논의의 중심에 있다.
특히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20세기 디스토피아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가문은 영국 지식인 사회에서 매우 저명했다.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한 생물학자였고, 아버지 레너드 헉슬리 역시 학자였다. 형 줄리언 헉슬리는 유네스코 초대 회장, 동생 앤드루 헉슬리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의학도를 꿈꿨으나,
10대 시절 점상 망막염으로 3년간 사실상 실명 상태를 겪으면서 의학의 길을 포기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교직 생활도 했으나 적응하지 못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헉슬리는 1938년부터 1964년까지 노벨 문학상 후보에 9번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의 삶은 단순히 작가로서의 경계를 넘어서 있었다. 정신과 영성, 과학과 문학, 실험과 통찰 사이를 끊임없이 횡단했던 인물.


그런 그가 단지 약물 체험을 기록했을 리 없다는 믿음이 나를 붙잡았고,


그래서 나는 그 낯선 언어를 견디며 끝까지 따라갔다.


결국 나는 그 책을 다 읽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었고, 애매했고,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지각의 문』은 한동안 내 기억에서 조용히 잊혀졌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기호학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고,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해석에 관한 첫 번째 가설-브루넬로를 찾아서-을 세운 이후,

다시 그 책이 떠올랐다.


기호가 의미를 가지기 전 세계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던 어느 밤,

헉슬리의 그 불가해한 문장들이 번뜩이듯 떠올랐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인간은 이렇게 축소된 자각의 내용을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언어라 불리는 상징체계와 암시적 철학을 만들어내어 면면히 발전시켜 왔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언어적 전승의 수혜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경험의 축적된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혜자이나,

동시에 언어 때문에 축소된 자각이 유일한 자각이라는 믿음을 강화하게 되고 현실감각이 교란되어 너무도 쉽게 개념을 소여(현실로 주어진 바)로 말을 실제의 사물로 착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이다.

종교적 언어로 말하자면
'이 세상'이라 불리는 것은 언어로 표현되어,
이를테면 굳어진 축소된 자각의 우주이다."
-『지각의 문』 49면


이제 나는 그 책을 다시 펼쳤고,

그 안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를 발견했다.

단지 ‘환각’이 아니라, 기호 이전의 리듬, 언어 없는 감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세계의 진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각의 문』은 비로소 읽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호 이전의 세계는 『지각의 문』을 통해 하나둘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전에 읽었던 책들이 새로운 맥락 속에서 패턴을 이루기 시작했고, 우연히 발견한 그 패턴이 세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기호의 귀환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 두 번째 독서의 기록이며, 동시에 기호의 해체 이후 무엇이 우리를 세계와 연결시키는지를 묻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기호가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떠오른 것은

언어가 아니라 감각, 개념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그리고 이 감각의 리듬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기호의 기원—감각에서 출발하는 의미의 구조를 다시 깨우기 시작한다.



1. 기호 이후의 질문

– 해체 이후, 무엇이 세계를 구성하는가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기호의 허무한 승리를 선언한다.

“이제 과거의 장미는 이름만을 남기고, 우리는 벌거벗은 이름만을 쥐고 있다.”

이 말은 중세 지식과 상징체계, 신의 질서로부터 파생된 모든 기호가 그 지시 대상을 상실한 채, 오직 ‘기표만 남은 기호의 세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기호가 해체된 세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 구조주의적 기호학이 말하던 것처럼,

세계는 기호를 통해만 파악될 수 있으며,

기호가 사라지면 곧 혼돈과 무질서만이 도래할 것이라 생각해 왔다.


* 구조주의 기호학

구조주의 기호학은 언어와 문화, 사회 현상을 기호(기표와 기의)와 이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이론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제시한 이론에 따르면, 기호의 의미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표들 간의 차이와 구조 내 위치에서 결정된다.

즉, 의미는 사회적 약속과 규칙, 그리고 기호 체계 내에서의 상호 관계에 의해 생성되며, 언어뿐 아니라 신화·문학·문화 등 다양한 현상에 적용된다.

구조주의 기호학은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구조와 규칙에 의해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구조주의의 핵심 과제는 의미 생산을 지배하는 구조와 관습을 밝히는 것이며,
이는 문학·예술·문화 연구에서 반복되는 패턴, 대립 구조, 상징체계 등을 분석하는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전제를 무너뜨리는 체험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각이다. 기호가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도래하는 것은 무의미의 공허가 아니라,

오히려 과도할 정도로 명증한 감각의 세계다.


기호를 거치지 않은 존재의 리듬,

이름 없는 사물의 진동,

언어 이전의 색채와 질감의 밀도.

이 모든 것이 언어가 침묵한 자리에서 솟아오른다.


이 장은 바로 그 기호 해체 이후의 세계에 나타나는 감각적 귀환의 현상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 감각은 단지 생리적 자극의 집합이 아니라, 기호 이전의 기호, 즉 감응적 리듬으로 구성된 의미의 전(前) 단계임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메스칼린 체험을 시작점으로 삼아, 어떻게 기호 없는 세계가 의미를 생성하는가, 그리고 그 체험이 어떻게 이후 DMT, 명상, 최면, 임사체험 등의 장들과 다양한 기호 발생 조건의 철학적 실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



2. 헉슬리의 체험: 기호 이전의 기호

– 해체된 언어의 자리에 현현한 존재의 리듬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1953년 5월, 올더스 헉슬리는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자택에서 메스칼린을 복용한 후, 자신이 지각하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그는 이 체험을 『The Doors of Perception』(지각의 문)이라는 책으로 남기며, “문 너머에 존재하던 또 다른 질서”를 기술했다.


* 메스칼린(Mescaline)

메스칼린은 주로 멕시코와 남미산 선인장(특히 페요테와 산 페드로)에 함유된 천연 페닐에틸아민계 환각성 알칼로이드로, 소량만 복용해도 강력한 환각 효과를 일으킨다.

메스칼린의 효과는 강렬한 시각적 착시, 색채와 밝기 감각의 변화, 현실·시간·공간에 대한 인식 왜곡, 행복감, 각성, 촉각 감각 증가, 공감각, 영적 체험 등이 있다.

고대부터 원주민의 종교적·의식적 용도로 사용되어 왔으며, 중독성과 의존성은 낮은 편이지만,
고용량 복용 시 불안, 우울, 정신증적 증상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가 본 것은 사물도, 개념도, 기호도 아니었다. 헉슬리가 직접 묘사한 것은 말 그대로 ‘존재의 진동’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것이 ‘의자’라는 것을 잊었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서 나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색채이고, 울림이며, 리듬이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환각 상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헉슬리는 기호가 작동을 멈췄을 때,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실험한 것이다.


그의 눈앞에서 ‘의자’라는 이름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색채의 농도,

그림자의 깊이,

빛의 떨림 같은

감각의 결들이었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거꾸로 묻게 만든다.

혹시 기호가
오히려 세계를 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물은 이름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름이 사라질 때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헉슬리의 체험은 찰스 퍼스(Charles Peirce)의 기호 이론 가운데 ‘일차성(Firstness)’ 개념과 정확히 맞닿는다.


퍼스는 기호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로,

해석주체(interpretant-보통 ‘해석체’라 번역)도,

지시 대상도 없는 순수한 감각적 질감과 느낌만 존재하는 상태를 일차성(Firstness)이라 불렀다.


즉, 아직 해석되지 않았지만 이미 ‘느껴지고 있는’ 어떤

질(質)의 현존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헉슬리의 경험은 바로 이 해석되지 않은 감각의 즉각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어가 없이도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는 사물의 밀도. 해석 이전에 존재하는 형태.


이것은 마치 기호가 되기 직전,

그 가능성이 감각의 리듬으로 맺히는 순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헉슬리가 본 세계가 단순한 ‘혼란스러운 감각 덩어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의미 없는 장면을 본 것이 아니다.

그의 시야에는 형태와 구조가 있었다. 색채와 그림자는 무작위가 아니라 리듬화된 진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기호가 되기 이전에도,

세계는 이미 어떤 질서와 패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메를로 퐁티와 롤랑 바르트, 출처: wikimedia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각은 개념화되기 전,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며,

신체는 세계와 얽힌 방식 그 자체이다.


헉슬리의 체험은 이 말을 감각의 차원에서 증명한다.


그는 더 이상 ‘의자’를 보지 않았다.

대신, 빛과 색, 압력과 밀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감각을 통과하며 이루는 리듬을 느꼈다.


그는 사물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자신의 감각을 통해 사물로 나타나는 흐름을 경험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기호의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기호가 태어나는 순간이 감각이라는 사실의 귀환이다.

기호는 언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 기호의 죽음

기호의 죽음은 '저자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기호는 더 이상 하나의 권위(저자, 창작자)에 종속되지 않고, 해석의 주체(독자, 수용자)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따라서 기호의 고정된 의미, 절대적 해석은 죽었다. 저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기호는 리듬, 밀도, 감각의 얽힘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다음 장들에서 다룰 DMT, 명상, 최면, 임사체험은 단순한 체험 보고가 아니다.


그것들은 감각–기호의 생성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탐구하는 실험들로 읽혀야 한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3. 리듬의 구조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 감각과 반복의 교차점에서 태어나는 기호의 씨앗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헉슬리의 체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물음은 이것이다.

감각은 어떻게 구조가 되는가?


다시 말해, 단지 흐르고 스쳐 지나가는 색채의 떨림이나 밀도의 진동 같은 ‘감각 그 자체’가 어떻게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반복되며, 나중에는 기호로 변해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물음은 기호의 기원에 대한 탐구이자,

언어철학・신경과학・현상학이 만나는 깊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3.1 철학, 현상학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찰스 퍼스는 기호의 출발점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석이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질(qualia)’—

즉 해석 이전에 단순히 느껴지는 감각 그 자체로 본다.


그가 말한 ‘Firstness(일차성)’란,

어떤 판단이나 해석 없이도 그냥 존재하고 있는 느낌의 상태다.


퍼스에게 이 Firstness는 기호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호가 자라나는 가장 깊은 뿌리이며,

감각의 구조 안에 이미 기호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감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흐르고 변화하며,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유동적 감각의 흐름 속에서 형태나 질서, 즉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 걸까?


그 답은 바로 하나의 핵심 개념,

‘리듬(Rhythm)’에서 찾아야 한다.
앙리 르페브르, 질 들뢰즈, 출처: wikimedia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리듬분석』에서 이렇게 말한다.

리듬이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차이와 차이 사이의 간격이 고정되는 방식이다

즉 리듬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들을 구별하고 조율하게 만들어주는 구조인 것이다.


*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 일상생활과 공간, 그리고 사회적 리듬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현대 사회 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리듬분석: 도시의 공간과 시간』에서 사회와 일상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리듬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르페브르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선형적 리듬(예: 출퇴근, 업무)과 자연적·순환적 리듬(예: 낮과 밤, 계절 변화)이 어떻게 교차하며,
이들이 우리의 삶과 도시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르페브르의 리듬분석은 리듬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반복과 차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임을 강조한다. 그는 사회와 공간, 신체와 시간의 관계를 리듬을 통해 감각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과 도시를 살아 움직이는 변화의 장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 현상을 고정된 구조가 아닌 유동적이고 생동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며, 현대 도시와 일상생활 연구에 새로운 분석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바와도 일맥상통한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말했다.

반복은
단순히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 들뢰즈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철학, 문학,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창적인 사유를 펼쳤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의 ‘동일성 우선’ 논리를 전복하고, 모든 동일성은 차이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즉, 세상은 고정된 본질이나 중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차이와 다양성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들뢰즈는 ‘차이’, ‘반복’, ‘탈영토화’, ‘재영토화’, ‘욕망 기계’, ‘기관 없는 신체’, ‘리좀’ 등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준 개념들을 제시했다.

들뢰즈는 특히 펠릭스 가타리와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을 통해 자본주의와 인간 욕망, 사회 구조를 분석하며,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 대신 유동적이고 다원적인 네트워크(리좀)를 강조했다.

그는 인간 중심주의와 초월적 신, 고정된 자아 개념을 비판하고, 무의식과 자연, 신체, 사회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중시했다.

들뢰즈의 철학은 기존의 경직된 사유 틀을 넘어, 끊임없는 생성과 접힘(주름), 그리고 차이의 긍정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

즉, 리듬은 감각 속의 미세한 차이들이 어떤 패턴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이며,


그것이 구조화의 시작점이라는 말이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우리의 몸은 항상 세계와 리듬으로 교차한다.


걷고,

숨 쉬고,

말하고,

눈을 깜빡이고,

심장이 뛰는 것까지—


우리는 세계를 리듬을 통해 체험하고,

감각은 수동적으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접촉하는 능동적 리듬의 패턴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감각은 비로소 기호를 잉태한다.


헉슬리의 메스칼린 체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본 것은 단순히 흐트러진 감각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턴이 있었고,

어떤 질서가 있었으며,

리듬화된 진동으로 구성된 감응 구조였다.

언어는 사라졌지만,
리듬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이야말로 기호 이전의 구조,

‘의미화 이전의 의미 구조’였던 것이다.



3.2 신경과학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러한 구조는 신경과학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시각은 단지 외부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뇌 속에서 예측된 패턴을 기준으로 정보를 필터링한다.


이것이 바로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 이론이다.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 이론 상세는 아래 글 말미의 주석 참고

뇌는 끊임없이 “세상이 이럴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그 예측과 실제 감각 사이의 오차만을 수정해 나간다.

즉, 감각은 처음부터 패턴화 된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기호는 감각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구조의 되먹임(recurrence of structure)이다.


기호란 세계가 자신을 반복하는 방식이며,

그 반복은 곧 리듬이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호는 감각 이후가 아니라,
감각 내부에서,
감각의 차이를 반복하는 리듬 안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우리가 2장부터 다룰 여러 감각 실험—DMT, 명상, 최면, 임사체험—에서 살펴보게 될 핵심 주제다.


각 실험은 감각의 리듬이 어떻게 구조로,

그리고 기호로 이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로 다른 조건의 실험실이다.



4. 그러나 리듬은 하나가 아니다.

– 기호 발생 조건들의 다양성과 리듬의 분기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헉슬리의 체험이 보여준 것처럼,

감각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현존이다.


감각은 아직 언어로 설명되기 전이지만, 무작위가 아닌 형식 있는 리듬으로 나타난다.


그 리듬은 반복되고, 공명하고, 패턴을 만든다.

패턴이 바로 기호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리듬이 똑같은 방식으로 기호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리듬은 하나가 아니며, 리듬이 기호로 이행하는 과정도 다양하다.


다시 말해,

기호는 하나의 경로만 따라 형성되지 않는다.


이 절은 이어질 다음 네 개의 장—DMT, 명상, 최면, 임사체험—에서 다루게 될 감각과 기호의 실험들이 어떤 ‘다른 조건’들 위에서 작동하는가를 미리 조율하는 예고편이다.



4.1 DMT – 기호 이전의 상징이 폭발할 때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DMT 체험은

일종의 ‘기호 없는 상징 세계’를 출현시킨다.


리크 스트라스먼의 임상 연구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세계, 언어를 넘는 메시지, 비인간적 존재들의 전언을 체험한다고 증언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해석 가능한 기호체계가 아니라, 감응적이고 직관적인 진동의 장(場)이다.


언어는 부재하지만, 그 부재가 오히려 과도한 의미의 밀도로 다가오는 현상이다.


이 장에서는 기호와 상징, 신경화학, 존재론이 만나는 지점, 즉 기호 생성의 과잉 조건을 탐구한다.



4.2 명상 – 언어를 지움으로써 드러나는 무명의 리듬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명상은 DMT와는 정반대다.


DMT가 신경화학의 폭발이라면, 명상은 감각을 서서히 닫고, 언어의 층을 하나씩 걷어내며,

그 아래 고요한 리듬의 밑바닥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 마음챙김(mindfulness)으로 알려진 알아차림, 호흡명상(아나빠나사띠), 통찰명상(위빠사나), 고요명상(사마타), 간화선, 정좌, 좌망과 같은 수행법은 언어적 구분을 제거하면서,

오히려 이전에 보이지 않던 질서를 드러낸다.


이 장은 기호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침묵 속에 잠재움으로써,

기호 이전의 감각 구조가 얼마나 정교한지를 드러내는 실험이다.



4.3 최면 – 타인의 언어가 나의 기호를 결정할 때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최면은 흥미로운 실험이다.


명상처럼 언어를 없애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그 언어의 해석주체(interpretant)를 타인에게 넘긴다.


즉, 나의 감각을 타인의 언어가 재구성하는 상태가 된다.


최면 상태에서 우리는 의심하지 않게 되고, 언어는 더 이상 의미를 묻는 기호가 아니라, 곧바로 행동을 지시하는 도구가 된다.


이 장에서는 기호가 외부로부터 주입될 때, 감각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지를 분석한다.



4.4 임사체험 – 죽음을 통해 도달하는 기호 없는 의미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임사체험은 기호의 죽음을 넘어서서,

기호 없이도 작동하는 의미의 상태를 보여준다.


피험자들은 공통적으로

빛, 사랑, 압도적인 평화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언어가 없는 메시지,

시간이 없는 앎,

자아가 해체된 상태에서의 이해이다.


이 장은 기호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여전히 어떤 의미적 감응은 존재하는 상태,

기호 없는 해석 가능성을 다룬다.


이쪽 분야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신경과학자이자 하버드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 이븐 알렉산더의 이야기가

그나마 신뢰성이 있어 이를 위주로 살펴본다.

이븐 알렉산더, 출처: ebenalexander.com

* 이븐 알렉산더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는 미국의 세계적인 뇌의학자이자 하버드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로, 2008년 급성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7일간 혼수상태(코마)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후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기록한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원래 의식과 영혼, 사후세계를 모두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 환상으로 여겼던 과학적 회의론자였으나,
자신의 뇌가 완전히 기능을 멈춘 상태에서 겪은 강렬한 체험을 통해 “죽음 이후에도 의식은 계속된다”, “신(神)과 사후 세계는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더 박사는 임사체험 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과 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했다고 밝히며, 자신의 체험이 뇌의 환각이나 기억 왜곡이 아니라는 점을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과학과 종교, 영성의 통합적 연구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는 모두 신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알렉산더 박사는 오프라 윈프리쇼 등 여러 방송과 언론에서 자신의 체험과 신념을 증언하고 있다



4.5 요약: 네 가지 실험실, 네 갈래 리듬의 고리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제 우리는 다음 네 장을 통해, 서로 다른 감각의 리듬이 어떻게 기호로 이행하거나, 혹은 기호를 회피하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아래는 이 네 가지 체험을 하나의 비교 구조로 요약한 표이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체험들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각기 다른 리듬 구조들이 기호를 어떻게 발생시키는지를 실험하는 철학적·신경학적 실험실이다.


그리고 모든 장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결국 이런 질문에 다다를 것이다.

기호란 정말로 언어인가?

아니면,

세계가 리듬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인가?


5. 탐사 선언

리듬에서 기호로, 기호에서 다시 세계로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기호는 사라진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호가 해체된 그 자리에서,

세계는 자신을 다시 조직하려는 첫 몸짓을 시작한다.


그 몸짓은 리듬이고,

리듬은 감각이며,

감각은 패턴을 낳고,

그 패턴은 기호로 이행한다.


우리는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헉슬리의 메스칼린 체험을 통해 이 흐름을 따라가 보았다.


그 체험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기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철학적 실험이었다.


언어가 멈춘 자리에서 감각이 다시 살아났고,

감각은 리듬을 이루었고,

리듬은 말이 없어도 구조를 지닌 채 현전 했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기호는 감각에서 왔는가?

그렇다면

기호는 어떻게 다시
감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앞으로 이어질 장들은 이 질문을 단순한 이론이 아닌 체험과 실험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즉, 2장부터 5장까지는 각각 하나의 감각–기호 전환 조건을 중심으로 구성된 철학적 실험실이다.


각각의 장은 독립된 체험 보고가 아니다.


각 장은 기호 생성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조건 실험이다.


우리는 이 실험들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기호는 반드시 언어로부터만 시작되지 않는다.


감각 속에도 이미 기호의 구조가 내장되어 있으며,

기호는 감각이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탐사 이후, 우리는 다시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언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 “기호는 뇌 속에 어떻게 새겨지는가?”

• “기호는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가?”

• “기호 없는 세계를 우리는 해석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2부 이후 언어의 내장, 자기 지시, 꿈의 기호학, 고대 해석학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더 깊고 정교하게 전개될 것이다.


『기호의 귀환』 제2부의 여정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장하(章廈).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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