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DMT, 리크 스트라스먼, 감응적 기호, 내적 시간
1990년대 초,
뉴멕시코 대학 병원 정신의학과의 조용한 실험실은
인간 정신의 지형을 다시 그리는 작은 혁명 현장이었다.
정신과 의사 리크 스트라스먼은
‘디메틸트립타민(DMT)’이라는 물질을 이용해,
인간의 의식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농축된 형태의
감각적 충격, 즉 기호 이전의 체험을 유도하는 임상실험을 진행하였다¹.
그는 이 물질을
“The Spirit Molecule(영적 분자)”이라 불렀다.
단순한 환각제가 아닌,
언어 바깥에서 의미가 응축된 채로 등장하는
초월적 접속의 매개라 보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 60여 명 중
상당수가 서로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동일한 테마의 체험을 보고했다.
그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빛의 존재가 말을 걸었다.”
“기하학적 패턴과 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메시지를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명확히 이해되었다.”
이러한 보고는
단순한 뇌의 오작동이나 주관적 착각이라 치부되기엔 지나치게 일관되고 구조화되어 있다.
오히려 그것은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 언어,
말해지지 않지만 전해지는 기호,
곧 ‘기호이되 기호로 되지 않는 것’의 형태로 존재한다.
스트라스먼의 연구는 신경정신의학이 금기시했던
초월 체험의 실증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진정한 충격은,
이 체험이 단순한 해체나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기호적 질서의 등장이라는 데 있었다.
피험자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구조를 경험했다고 보고한다:
공간은 기하학적 구성으로 재편되었고,
시간은 순간의 밀도로 압축되었으며,
자아는 순수 관찰자로 축소되었고,
메시지는 언어 없이도 전달되었다.
이 현상은 뉴런 간 신호 교란으로 보기 어려운,
감각이 구조를 낳고, 구조가
기호로 이행되기 직전의 진동적 상태를 드러낸다.
스트라스먼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어떤 것을 받았으며,
그것은 의미를 넘치게 담고 있었다.²
* 스트라스먼의 DMT실험 관련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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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크 스트라스먼(Rick Strassman)
리크 스트라스먼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과학자로, 환각제인 DMT(디메틸트립타민)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최초로 합법적인 DMT 임상시험을 주도하며, DMT가 인간의 의식, 신비 체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인물이다.
스트라스먼의 연구는 환각성 약물이 뇌와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정신질환 치료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DMT 투여 시 참가자들이 경험하는 강렬한 환각과 영적 체험, 그리고 이 약물이 뇌의 신경 회로와 의식 상태를 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그의 저서 『DMT: The Spirit Molecule』은 대중과 학계 모두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환각성 약물의 치료적 가능성과 신경과학적 연구의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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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T
DMT(디메틸트립타민)는
강력한 환각제이자 세로토닌성 향정신성 물질로, 자연적으로 여러 식물과 동물에서 발견되며
인간의 뇌에도 소량 존재한다.
이 물질은 뇌의 세로토닌 수용체와 시그마-1 수용체 등 최소 13가지의 수용체에 작용하여 강렬한 환각, 감각과 인지의 변화,
감정의 고조를 유발한다.
DMT는 경구, 흡입, 주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여될 수 있으나, 경구 복용 시에는 MAOI(모노아민 산화효소 억제제)와 함께해야만 활성화된다. 아야와스카와 같은 남미 전통 의식 음료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며, 이 음료는 DMT와 MAOI를 함께 포함해 강한 환각 효과와 영적 체험을 유도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DMT는 해마의 신경 줄기세포 증식과 분화, 신경 생성(뉴로제네시스), 신경세포의 이동과 성숙을 촉진하며, 이로 인해 학습과 기억력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DMT 투여 시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아교세포, 희소돌기교세포) 생성이 증가하고, 학습 및 기억력 테스트에서 더 나은 성과가 나타났다.
임상적으로는 급성 뇌허혈(뇌졸중 등)에서 신경세포 사멸을 줄이고, 파킨슨병이나 주요 우울장애 치료 후보물질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DMT는 미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 남용 가능성과 의료적 인정 부족을 이유로 엄격히 규제되는 Schedule I(1급) 마약류로 분류되어 있으며, 연구와 치료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이 허가된다.
DMT의 급성 독성은 낮은 편이지만,
심혈관계 부작용(심박수·혈압 상승)과
정신적 부작용(불안, 공황, 정신병적 반응) 위험이 있어 의료적 사용 시에도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체험은
퍼스(Charles S. Peirce)의 ‘일차성(Firstness)’,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살로서의 세계’,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지각의 문』에서 묘사한 말 없는 사물들의 공명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스트라스먼만이
이러한 체험의 보고서를 작성한 유일한 학자는 아니다.
앤드류 갤리모어는 이러한 DMT 체험을
“현실 전환 스위치(reality switch)”로 분석하며,
DMT가 뇌의 ‘현실 생성 회로’를 바꾸는 구조적 신경매개체라 주장하였다³.
그는 DMT 상태에서는
뇌가 현실을 재조합하는 알고리즘 자체를 교체하며, 기호 작용의 조건이 변형되는
새로운 차원의 의식 상태가 열린다고 본다.
* 앤드류 갤리모어(Andrew R. Gallimore)
앤드류 갤리모어는 영국 출신의 신경생물학자, 약리학자, 화학자이자 작가로, 현재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OIST)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뇌, 의식, 현실의 구조와 환각제(특히 DMT)의 관계, 강력한 환각제 DMT의 신경생물학적 작용과 의식 변화, 그리고 이 약물이 현실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갤리모어는 리크 스트래스먼과 함께 DMT의 지속적 투여 모델을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DMT 상태에서의 장기적 체험 연구를 제안한다.
또한 데이비드 루크(David Luke)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계 존재 접촉,
수학적 공간 체험, 언어 없는 메시지를 연구하며,
DMT 체험이 단순한 내면 환각이 아닌,
집단적 인식 패턴의 발현이라고 주장한다⁴.
이들 연구자들의 공통점은,
DMT 체험이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전해지는 구조(transfer of structure)라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 데이비드 루크(David Luke)
데이비드 루크(David Luke)는 영국 그리니치 대학교(University of Greenwich)의 심리학 부교수로, 의식 변화 상태, 트랜스퍼스널 경험, 이상 현상, 특히 환각제(psychedelics)를 통한 체험 연구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심리학자다.
루크는 LSD 임상시험, DMT 현장 실험, 멕시코 샤먼들과의 기상 조절 관찰 등 다양한 실험과 현장연구를 수행해 왔고,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명예 선임강사, Alef Trust 강사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실험실 기반 연구뿐 아니라 현장, 민족지학, 자기민족지학 등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하며, 과학적·샤머니즘적 관점을 모두 존중하는 열린 태도를 지향한다.
루크의 연구는 환각제 체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외계 존재 접촉, 기하학적 공간, 언어 없는 메시지 등 집단적 인식 패턴과 그 심리·신경생물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정교해진다.
이들이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은 기호인가?
우리는 그것이 해석되지 않아도 전달되었고,
이해되지 않아도 수용되었으며,
표현되지 않아도 감응되었다는 점에서,
그 체험을 ‘감응적 기호 구조’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은 기존 기호학의 정의를 넘어서,
기호가 되기 직전의 의미,
혹은 기호로 분해되지 않는 구조의 밀도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절에서 이 감응의 층위가
인간 의식의 가장 근본적 구조인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철학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분석은 결국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통찰로 향하게 한다:
기호는 시간과 공간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기호 자체가 시공간을 발생시킨다.
스트라스먼의 실험실을 떠난 피험자들이 가장 자주 남긴 증언은 의외로 단순하다.
“시간이 멈췄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순간이 무한해졌다.”
그들은 대체로 몇 분에서 길어야 20분 내외의 체험 시간을 가졌으나,
그것은 측정 가능한 물리적 시간의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체험은
“끝나지 않은 채 끝났고,”
“영원이 한 점에 압축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시간 왜곡이 아닌,
시간 개념의 해체, 즉
기호적 시간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은 선형적이며, 기호로 배열된다.
언어는 순차적으로 펼쳐지며,
의미는 순서 위에서 성립된다.
예를 들어 “I love you”라는 문장은
순서를 바꾸면 의미가 변한다.
이처럼 언어는
시간 위에 기호를 놓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그러나 DMT 체험은 이 구조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는 후설(Edmund Husserl)의
‘내적 시간의식’ 개념과 정밀하게 겹친다.
후설은 『의식의 내적 시간 현상학』에서
“시간은 외부에서 흘러가는 시계가 아니라,
의식 안에서 구성되는 지향적 구조”라고 했다¹.
다시 말해, 시간은 기호 작용의 결과이며,
기호가 작동을 멈출 때 시간도 그 기초를 잃는다.
DMT 체험자들은 종종 말한다: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시간 안에 있었다.”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했고, 의미 없이 겹쳤다.”
“순간이었지만 영원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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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 이론은 객관적이고 외재적인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경험되는 ‘나타나는 시간’, 즉 체험의 흐름으로서의 내재적 시간에 주목한다.
그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세계의 실재적 시간이 아니라, 의식의 경과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시간 현상이며, 이는 지각의 흐름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후설은 내적 시간의식의 구조를
-‘근원인상(Primordial Impression)’
(현재의 직접적 경험),
-‘파지(Retention)’(지나간 순간의 여운),
-‘프로텐션(Pro’(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세 가지 상호작용적 층위로 분석한다.
이 세 층위는 단순히 나열된 것이 아니라,
현재, 과거, 미래가 의식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하고 겹쳐지며, 음악의 멜로디나 소리의 지속처럼 시간적 대상을 통일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 근원인상, 파지, 프로텐션
- Primordial: 라틴어 “primordialis”에서 유래, “처음의, 원시의”라는 뜻. “primus(첫째)” + “ordiri(시작하다)“의 합성어.
- Retention: 라틴어 “retinere”에서 유래, “붙잡다, 유지하다”라는 뜻. “re-(다시)” + “tenere(쥐다, 잡다)“의 합성어. 방금 지나간 순간의 여운이나 흔적. 현재 경험에 남아 있는 과거의 잔상.
- Protention: 라틴어 “protendere”에서 유래, “앞으로 뻗다, 내밀다”라는 뜻. “pro-(앞으로)” + “tendere(뻗다)“의 합성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나 예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예상하는 시간의식의 층위.
‘Retention’을 ‘파지’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 용어가 단순히 ‘기억’이나 ‘보존’이 아니라,
지나간 순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현재 의식 속에 여운처럼 남아 있는 일차적 과거의식,
즉 ‘붙들어 두는 작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파지’는 ‘붙잡다’, ‘지탱하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어로, 후설이 말하는 retention의 본래적 의미-과거의 순간을 현재의식 안에 붙들어 두는 작용-를 가장 잘 드러내는 번역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후설은
전통적 시간관이 가진 ‘지금’의 단절성에서 벗어나,
의식의 흐름 속에서
현재, 과거, 미래가 하나의 연속적 장(field)으로
구성됨을 밝힌다.
결국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 이론은
모든 경험의 바탕에 시간의식이 깔려 있음을 보여주며, 의식의 자기 동일성과 경험의 연속성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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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표현은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순수 지속(durée pure)’ 개념과도
정밀하게 연결된다².
베르그송에 따르면
시간은 선형적 축이 아니라,
질적으로 흐르는 연속체이며,
기호화될 수 없는 감각적 직조물이다.
DMT 체험에서 ‘이해되지 않지만 느껴지는 시간’은
바로 이 비기호적 지속의 출현이다.
베르그송의 시간철학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이러한 시간의 붕괴는
단순히 체험의 주관적 착란이 아니라,
기호적 작용이 정지될 때 나타나는 현상학적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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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점에서
로빈 카하트-해리스의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뇌의 Default Mode Network(DMN)가
DMT 투여 시 강하게 해체되며,
그 결과 자아 감각뿐 아니라
기호화 기능 자체가 일시적으로 정지된다는 것을
fMRI를 통해 보여주었다³.
그는 이것을 “의식의 신경적 탈구조화”라고 불렀다.
이때 인간은 세계를 기호로 번역하던 체계를 잃고,
순수 감응 상태에 진입하게 된다.
* 로빈 카하트-해리스(Robin Carhart-Harris)
로빈 카하트-해리스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약리학자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 신경과학·정신의학과의 Ralph Metzner 석좌교수이자 Neuroscape Psychedelics Division의 설립 및 책임자다.
그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세계 최초로 사이키델릭 연구센터(Centre for Psychedelic Research)를 설립·이끌었으며, 실로시빈(환각버섯 성분), LSD, MDMA, DMT 등 다양한 환각제의 뇌 영상 연구와 임상시험을 주도해 왔다.
카하트-해리스는 뇌 영상 기술을 이용해 환각제 상태에서의 뇌 기능 변화를 분석하고, 이 약물들이 우울증, 불안, 중독 등 난치성 정신질환 치료에 미치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2016년에는 실로시빈이 기존 항우울제보다 더 높은 관해율을 보인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환각제의 치료적 잠재력과 안전성, 의식 변화 메커니즘을 밝히는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적 이론인 ‘엔트로피 뇌 이론(The Entropic Brain Theory)’은 환각제가 뇌의 예측 모델을 이완시키고, 신경 네트워크의 자유도와 유연성을 높여 새로운 통찰과 심리적 재구성을 촉진한다고 설명한다.
카하트-해리스는 사이키델릭 치료가 정신 건강의 주류로 자리 잡을 것이라 전망하며, 임상·기초 연구와 사회적 논의 모두에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사이키델릭(psychedelic)
사이키델릭은 그리스어 ‘psyche’(마음, 정신)와 ‘deloun’(드러내다, 보여주다)의 합성어로, ‘마음을 드러낸다’, ‘정신을 보여준다’는 뜻을 가진다.
이 용어는 LSD, 실로시빈, DMT, 메스칼린 등 강한 의식 변화와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약물군을 가리키며, 복용 시 감각과 지각이 극적으로 변화하고, 현실감이 달라지며, 자아 경계가 약화되고, 색채·소리·공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사이키델릭은 단순히 환각을 유발하는 것뿐 아니라, 내면의 감정, 기억, 무의식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면화되어 ‘마음의 깊은 구조’를 체험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피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떤 도형의 일부가 되었다.”
“기하학이 살아 움직였다.”
“위치가 아니라 에너지의 장에 있었다.”
이러한 표현은 위치 중심의 데카르트적 공간이 아니라, 역장적 구조(field structure)를 지향한다.
이는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가
『지각의 현상학』에서 말한 신체화된 공간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공간이란 좌표계가 아니라
“신체와 세계의 얽힘이 낳는 긴장적 구조”라고 보았다⁴.
공간은 사물이 배열되는
(실재적 또는 논리적) 매체가 아니라,
사물의 위치가 가능해지는 수단이다.
Space is not the (real or logical) medium in which things are arranged, but the means by which the position of things becomes possible.”
(프랑스 원문: “L’espace n’est pas le milieu (réel ou logique) dans lequel se disposent les choses, mais le moyen par lequel la position des choses devient possible.”)
DMT 공간은 위치가 아니라 구조이고,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장(場)이다.
앤드류 갤리모어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DMT는 뇌가 공간과 시간이라는 정보 포맷을
완전히 바꾸게 만든다.
우리가 보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지각 구조의 새 암호 형식이다.”⁵
요컨대, DMT 체험은 단지 환각이 아니라,
기호적 세계가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감응적 시공간 구조의 표층이다.
기호가 멈추자 시간도 멈췄고,
자아도 사라졌으며,
공간도 기호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DMT 체험을 통해 다음과 같은 귀결에 이른다:
1. 기호는 시간과 공간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산출하는 형식이다.
2. 기호가 멈추면 시간은 분해되고,
공간은 다시 긴장과 밀도로 재구성된다.
3. 그러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말없이 존재하는 의미, 언어 없이 감응되는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이 ‘해석 불가능한 의미’가
언어 없이도 어떻게 메시지가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기호는 해석되어야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감응으로 존재하는 기호의 가능성,
즉 ‘언어 없는 메시지’를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