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 하나, 새우볶음밥 하나, 낙지정식 하나
4인 가족의 점심 메뉴
코로나가 다시 난리라 세 끼 밥을 집에서 먹어야 하는 시기. 점심은 시켜먹기로 했다. 뭐 먹고 싶은지 물으니, 첫째는 오므라이스, 둘째는 새우볶음밥을 먹겠다고 한다. 남편에게 물으니 그 집에 뭐뭐 파냐고. 메뉴를 읊어주니 낙지정식을 골랐다. 그리하여 오늘의 점심 메뉴는 오므라이스 하나, 새우볶음밥 하나, 낙지정식 하나다.
미취학 아동 둘이 있는 네 식구라 메뉴를 네개 시키면 버리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메뉴를 고르고 세 메뉴를 조금씩 덜어 내가 먹는 것.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엄마니까 어쩐지 조금 불쌍하게 먹게 된다. 티비를 보다보면 연예인들도 아기들이 먹다 남긴 찬밥으로 식사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서서 허겁지겁 먹어치우던데, 엄마들은 집집마다 왜 이러는 건지.
어릴 적 엄마는 늘 늦게 드셨다. 음식 준비하시느라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늘 맨 마지막까지 드셨다. 드시는 속도가 늦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아니, 솔직히 엄마의 식사 속도에 대해 잠시라도 부러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얼마간 살아보니 알겠더라. 오늘 차린 음식 중에 식구들이 무얼 좋아할지 모르니 식사 시간 내내 살피게 된다는 걸. 아이며 남편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내가 좀 덜 손대고 별로 찾지 않는 음식에 부지런히 들락날락하게 된다는 걸. 매일이 새로운 그 상황을 가만 살피고 있자면 먹는 속도는 절로 느려진다. 무엇이 남을지 얼마나 남을지 모르는 매일의 식탁에서 남는 음식은 마지막에 처리하는 게 편하니, 늘 마지막까지 남는 건 엄마였고 지금은 (엄마인)나다.
식사를 늦게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막상 해보니, 상에 올리는 모든 음식을 따뜻하게 먹이려면 모든 가족이 상에 모인 시간에도 분주히 움직여야 하더라. 준비도 다 안 됐으면서 왜 불렀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진짜 한번 해보면 안다. 안 해보고는 그 이유를 진짜 모르겠더라. 매우 순종적인 딸이었지만, 그 상황만큼은 이해가 안 가서 엄마는 맨날 왜 그러나 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그러나, 해보면 백만번 이해가 된다.
나는 매 끼니 손수 음식을 해주는 엄마는 아니다. 처음에는 어설피 시도하다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 지금은 반찬가게도 애용하고, 배달 음식도 먹다가, 반조리 식품까지 섭렵하고 있다. 물론, 엄마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는다. 때마다 바리바리 얼마나 보내주시는지. 손도 크셔서 매일 먹어도 도무지 닳지 않는다. 여러 곳으로부터 흘러온 음식들을 보기만 좋게 식탁에 차려 놓으면 네 살짜리 우리 둘째는, 엄마, 맛있는 음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다.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어찌나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드는지. 그래서 마음 고쳐먹고 본격적인 요리를 다시 시작해봐? 싶다가도 이내 내려놓는다. 그러다 지쳐 허우적댄 지난 날들이 썩 괜찮지 않았기에.
살아보니 엄마는 이래나 저래나 딸의 롤모델이더라. 양보와 배려를 가르치면서도, 딸들이 살았으면 하는 모양대로 살아내는 것도 엄마의 몫인 것 같다.
엄마까지 식탁에 앉으면 다 같이 밥 먹기 시작하자고 딸들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음식이 따뜻한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엄마도 역시 식탁의 주인공이고, 내 딸이 엄마가 되었을 때에도 그러하길 바라니까.
20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