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은 사회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해였다. 당시 전투경찰로 배정 받은 나는 소도시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면서 중학교 동창이었던 그를 만났다. 그는 조폭으로 나는 전투경찰의 신분으로 만난 것이었다. 그와의 추억은 중학교 시절부터였다.
나는 중학교 시절 심장병으로 병원을 전전하던 때라서 학교 오후 수업은 항상 조퇴하기 일쑤였다. 내가 병약했던 이유로 운동장에서 이루어진 월요조회시간이 지루했던 친구들은 나에게 쓰러지라고 종용했다 내가 쓰러지면 나를 부축하면서 교실로 들어가기 위한 친구들의 전략이었다. 그 친구들 가운데 가장 작은 친구 한명이 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꼽추였다. 오른쪽 등뒤에 큰 혹과 오른손이 마비된 관계로 왼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 오른손은 거들 뿐이었다.
우리집은 큰 식당을 하였기 때문에 나의 도시락은 화려했다. 도시락을 열기도 전에 친구들이 숟가락을 들고 서 있을 때도 많았다. 나는 도시락을 뺏기기 싫어서 도시락을 열면 밥에 침을 뱉었다. 친구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밥에 숟가락을 담궜다. 그런 나를 가장 가까이서 도와준 친구는 그 꼽추친구였다. 내가 힘이 없어서 아침마다 그는 내 가방과 자기 가방 두개를 굳어진 오른 손으로 들고 학교에 등교 했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꼭 도시락을 두개씩 싸주곤 하였다. 힘없이 걷던 나와 작은 키로 가방 두개를 들고 등교하던 우리 둘을 병신과 머저리라고 불렀다.
반에서 덩치 큰 아이들은 그 작은 친구를 공으로 여기고 큰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농구 흉내를 내곤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밝은 모습을 유지했다. 왼손을 흔들며 웅변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정도로,.....
고등학교 진학 이후 나는 종교에 빠졌고 그는 폭력배가 되어 갔다.
파출소에 잡혀온 그 친구와 나는 처음 서로를 보고 놀랐다. 경찰은 아니지만 공권력 하수인이던 나와 조폭 부두목으로 마주치는 순간 서로는 말이 없었다. 이후 어찌어찌 풀려난 그와 나는 과거의 추억과 고등학교 시절 공백기의 추억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역전 파출소 근처 다방에서 이뤄졌다. 다방에 들어서면 그 친구는 으레 건달의 모습으로 담배를 꼬나물고 외쳤다.
“어이 김양아, 여기 슈가워터 더블”
난 처음 슈가워터 더블이란 음료 이름을 몰랐다. 콩글리쉬를 넘어 전라도식 영어라서 고급 음료 이름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설탕물 두 잔을 그렇게 고급스럽게 외쳤다. 다방에 공짜 음료를 마시는 것은 미안했던지 그렇게 설탕물 두 잔을 시켜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