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기자가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의지와 열정을 가다듬어야겠다는 의지는 충만한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악순환의 반복. 어느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점점 목이 졸리다가 숨조차 제대로 못 쉴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계도 사실 많다. 그렇지만 정녕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느냐는 질문에 단번이 YES!라고 외치지 못하는 거 보면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나 보다. 노력했던 것도, 앞만 보고 내달린 것도 모두, 느슨해진 내 마음가짐 앞에서는 기억나질 않는다. 꽤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곰곰이 되짚어봤다. 나는 기자가 하기 싫은 걸까? 아니면 현업에서 일하고 싶은 걸까?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걸까? 사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 전에는 내가 싶었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은 하고 싶은 일도 없다. 현실을 도피하고만 싶은 심정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열심히 뛰지 않은 내 탓도 크겠고 열정의 구심점을 잃어버린 것 또한 내게 잘못이 있을 거다. 언론사라는 조직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내게 전적으로 잘못이 있을 거고 나만의 독창성만을 찾겠다며 고집부린 나의 이기심이 탓이 클 것이다.
지금 이러한 상황을 마주한 게 전부 내 탓 같다. 일을 열심히 안 하고 노력도 안해서, 그래서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자괴감이 크다. 1년 전과 마음가짐이 같다고 한다면, 솔직히 그건 거짓말이다.
매일매일 기사를 쓸 정도로 매번 새로운 기사거리가 잡히는 건 사실 아니다. 매번 새로운 팩트를 발굴해서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라면 체력과 인맥,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큰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IT분야는, 특히 카카오와 네이버, 3N(넷마블, 엔씨소프트, 넥슨)으로 점철되는, 그런 기사가 많이 나오질 않는다.
IT기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IT기술은 심도있게 다루지 않는다. 대개 다루는 기사는 게임, 광고 등이다. 결국 네이버와 카카오가 뭘하든 기승전광고이며 그 외 콘텐츠는 대개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경제지라는 특성에 걸맞게 매출과 실적, 향후 주가 전망을 양념으로 곁들인다.
그런데 이런 기사에 사실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보고서를 보든, 업계 관계자에게 전화하든 껍데기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뭐랄까, "업계에선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전문가는 이렇다고 평가하더라~"라는 전언이랄까.
선배들은 "기자는 전달자의 역할을 충분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녕 기사를 쓸 때 내 사심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특정 기업의 편을 서든, 누군가의 말에 힘을 실어 주든, 그런 프레임을 짜고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나열하는 순간부터 이미 기자 개인의 가치관이 기사에 투영된다. 일련의 취재-기사 쓰는 과정에서 팩트는 무엇인지, 객관적 쓰기는 무엇인지 혼란이 가중된다.
진짜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고 실무진도 많이 만나봐야 하는데, 사실 현실의 벽은 높다. 대개 전화로 취재를 마무리할 때도 잦다. 김정운 박사의 '에디톨로지’처럼 기존 나와 있던 정보를 잘 엮어서 기사를 쓴다는 느낌도 가끔 든다.
문득 브런치를 들여다보니 나는 6개월 전에도 이런 비슷한 고민을 했다. "나는 정말 혼란스럽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었다. 그런데도 해답을 찾지 못한 거 보면 내가 몸담은 이 산업에 문제가 있거나, 내게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선배들은 또한 말한다. 내 연차 때 할 것이 있고, 연차를 쌓고 나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나눠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때 쯤이면 현실에 순응해 그럭저럭 기자라며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역시 때려치우거나. 내게는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사실 그동안 여러 시도를 해봤다. 데이터를 가지고 기사를 써보기도 하고 전화를 돌리고 사람을 만나서 들은 정보를 토대로 팩트 확인 후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기자생활을 할 때도 소속이 중요할 수는 있겠다. 나 같아도 조중동 기자라고 하면 벌떡 일어나 악수를 청할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의 가도를 걷는 게 아니듯이, 모두가 조중동 기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류라고 인정되는 메인 스트림에 파고들 수 없다면 나만의 무기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기사를 쓰다가는 왠지 세상으로부터 도태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지금 공시기사는 로봇이 쓰고 있고 언젠가는 보도자료 처리부터 단순 스트레이트 기사까지 로봇이 쓰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최첨단 시대를 대비해 하루라도 빨리 나만의 비기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그런데 그 비기를 모르겠다. 정론법으로 뚫는 방법은 있다. 한 단계씩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안하다. 평생 기자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사실 YES라고 답을 하기도 어렵다. 나는 왜 기자를 했을까, 꼭 기자여야만 했을까, 기자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질문에 질문을 꼬리 지어 물어보는 그런 밤이다.
사실 내게 선택지는 있다, 다만 새로운 결심, 그로 인한 파장을 내가 떠안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