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많이 돌면 돌수록 매물을 보는 눈이 알아서 길러집니다 *_*
부동산 시장을 보자. 모바일 앱과 웹을 통틀어 국내에서만 250개가 넘는 관련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직방, 다방, 호갱노노, 네이버 부동산이 있다. 여기에는 9만여 개의 중개업소가 참여하고 있다. 개인이 중개업소를 끼지 않고 손쉽게 매물을 올릴 수 있는 직거래 시장도 열려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주로 직방과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전세 매물을 알아봤다. 하지만 종국에는 가장 많은 매물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네이버 부동산을 활발하게 이용했다.
물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고객으로서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서비스는 공인중개사가 자신의 매물을 파는 장소로 활용하는 광고 플랫폼이다 보니, 일부 중개업자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정보를 기재하거나 존재하지도 않은 허위매물을 등록한다. 문제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상 허위 매물 근절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설사 고의가 아니라 해도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동시다발적으로 관리하다 보면 매물의 계약 여부 등을 실시간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또한 고객 입장에서는 허위매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매물을 중복해서 올리지 못하게 하고, 진짜 정보만 입력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할 방법은 한 명의 공인중개사가 집 하나를 전담하는 구조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공동중개가 사실상 허위매물 근절을 어렵게 만든다. 공동중개는 한 매물을 2~3곳의 부동산이 함께 중개하도록 허용한 것인데, 위에서 기술한 문제로 시시각각 매물 계약 여부를 갱신하지 못해 시스템상 어쩔 수 없이 허위매물이 발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은 이미 전속 중개를 허용하고 있다. 직방에서도 허위매물관리전담팀을 따로 둘 정도이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매물을 다 직접 관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직방을 이용할 때 내가 어떤 부동산에 어떤 문의를 했는지 트래킹하기 어려워서 참 아쉬웠다. 전날 밤 직방 앱을 통해 매물 문의 문자를 넣어두면 아침 8시부터 다짜고짜 전화부터 하는 부동산이 태반이었다. 한창 근무 중인 시간대에도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결국에는 매물을 한창 알아보러 다니던 시기에는 전화번호부에 저장하지 않은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모두 받지 않고 문자만 주고받았다.
부동산 방문 약속을 30분 텀으로 급하게 잡다 보니 장소를 착각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만약 부동산 방문 약속을 잡는 거라면 되도록 전화보다는 문자를 추천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지만 문자를 '잘' 하는 공인중개사일수록 신문물이나 정보에도 밝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로 본 집은 1억4500만원의 오피스텔(전세)로, 16평형에 실평수는 10평으로 상당히 넓었다. 정사각형 구조의 방도 마음에 들었고 역세권(수내역)에 위치, 밤늦게 퇴근해도 치안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지어진 지 10년 넘은 건물이라 화장실이 낡아보이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 세입자를 들일 때 방 도배를 새롭게 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도가 높았다.
다시 부동산에 돌아와 등기부등본을 떼 보니 '을구'는 깨끗했다.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없다는 의미다. 주인 나이를 보니 85년생. 어린 나이에 자력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매매가는 1억5000만원으로, 전세가와 불과 500만원밖에 차이 나질 않았다. 깡통전세가 불안하기는 해도, 그렇지 않은 집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매매가는 참고만 했다.
참고 | 등기부등본 을구에는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저당권, 임차권 등이 기재된다. 만약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해당란에는 채권자와 채권최고액이 기재돼 있다.
두 번째로 본 집은 모란역 근처 1억5000만원의 오피스텔(전세). 여기도 실평수는 11평으로, 첫번째 집과 가격과 평수 모두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첫 번째와는 달리 집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고, 꽃무늬로 치장한 벽지도 눈에 거슬렸다. 남자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방에 담배 냄새도 살포시 났다. 오래 보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또 첫 번째 집과는 달리 공인중개사가 등기부등본을 보여주지 않았다. 등기부등본을 보여달라는 내 요구에 "나중에 계약할 때 보면 된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안이 벙벙했다. "현재 집주인 명의로 5000만원 대출이 있는데, 전세금 주시면 그걸로 대출 다 갚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도 미심쩍었다. (내 입장에서는) 말로만 때우려는 공인중개사의 태도에 신뢰가 가지 않아 두번째 집을 포기했다. 계약금이라도 10만원 걸고 가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어차피 지금 시간이 오후 8시라 내일 오전까지 급하게 방 보러 올 사람도 없을 것 같으니 상황 보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일갈해버렸다.
참고 | 정말 좋은 집들은 내놓자마자 빠진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12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있다. 계약자들이 주로 방 보러 다니는 시간이 평일 오후, 저녁임을 감안한다면 익일 오전에 급하게 방이 나갈 확률은 지극히 낮다. 따라서 다음날까지 여유롭게 생각해도 늦지 않다. 그 사이 매물이 나간다면 인연이 아닌 거로 :(
집에 오자마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첫번째 본 집으로 계약을 진행하려고 했다. 공인중개사가 '디딤돌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했다는 사실에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우린 몰라요"라는 식이라서 자칫 계약하고 나서 대출 문제로 계약금을 날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이렇게 첫주의 시도가 불발로 끝났다. 여러모로 공인중개사의 적극성이나 정보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좋겠다는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자위했다(ㅠㅠ).
두번째 주에는 풀옵션 원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개 역세권에 위치하는 오피스텔과는 달리 원룸은 역에서 버스로 갈아타서 또다시 10~15분 정도 들어가야 겨우 볼 수 있다.
그렇게 세 번째로 본 집은 바로 방 쪼개기를 한 곳이다. 문제는 현행법상 방 쪼개기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서류상에 존재하는 방수로만 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이조차도 제대로 납부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신축공사일 경우 담당 공무원이 건축사로부터 돈 받고 눈감아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번 건은 건물주가 재공사를 통해 불법 방쪼개기를 단행했다.
다소 높은 도덕적 행동을 요구받는 집주인 교사 부부가 그랬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공인중개사는 두 사람이 교사라 그런지 성격도 조용조용하다는 걸 두세 번 강조했으나, 임대수익을 극대화하고자 서류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방을 불법적으로 만든 것에 대해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등기부등본을 계약할 때 보여준다고 한 것도 최대한 치부를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무사히 잘 살고 나오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반드시 문제가 된다. 이런 매물이 불법인 걸 알면서도, 전문적으로 대출을 실행해주는 은행원을 소개해준다는 말을 앉아서 듣고만 있어야 했다. 또 속이 아프다.
참고 | 건물주만 배불리는 ‘방 쪼개기’..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야탑 근처 또다른 네 번째, 다섯 번째 매물도 그저 그랬다.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가 아들 밥주러 가야 한대서, 아주머니가 전화 너머로 불러주는 비밀번호를 입력해 합법적인 침입(?)에 시도했다. 안전문제상 2층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구며 벽이며, 신발장이며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치도 좋지 않았다. 정말 외진 곳이라 오후 8시가 되는 시각임에도 불구, 길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두 번째 외출은 그렇게 상흔만 남은 채 끝이 났다.
참고 | 오로지 모든 피해는 세입자가 본다. 불법적으로 방 쪼개기를 단행한 주인은 벌금만 내면 끝이다. 집주인이 배째라 나오면 200만원 안팎의 월세 보증금을 포기하고 마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를 단속해야 하는 공무원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방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신림동이나 대학촌은 이런 불법 방쪼 개기 매물로 넘쳐난다. 그래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돈이 없는 청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서다.
참고 | 돈벌이만 급급한 집주인…대학가 불법 원룸, 안전 '뒷전'
억 단위 돈을 남에게 2년간 빌려주는 대가로 집을 빌려 살지만, 그 돈을 2년 뒤 확실히 돌려받지 못할지도 못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매물을 검색하고, 부동산을 찾아가 방을 보고 계약서를 보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됐다. 이렇게 전셋집 하나 마련하는 게 이토록 스트레스라면 월세를 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100만원에 상당하는 관리비와 월세, 각종 공과금을 감당할 생각하니 월세는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그사이 셰어 하우스도 잠깐 알아봤다. 보증금 5000만원 정도 내면 한 달 23만원 정도의 관리비만 내고 살 수 있는 곳도 발견했다. 문제는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같은 값이라면 사생활도 보장받을 수 있는 전세가 낫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다시 힘을 내봤다.
그렇게 세 번째 탐방이자 여섯 번째로 방문한 곳은 바로 신분당선 라인 역세권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전세 매물은 그렇다 쳐도 공인중개사랑 궁합이 좋았다(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복비 문제로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졌다. 역시 돈 앞에선 친구(!)도 없다).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봤는데 친절하게 대답해준 것은 물론, 무엇보다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다음 날 동향과 남향 중 동향으로 하겠다고 전화했다.
물론 복병이 있기는 했다. 동향과 남향 집주인 모두 임대차계약을 1년마다 갱신하길 원했다. 수가 틀리면 1년 뒤에 다시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집값이 오르는 대로 전셋값을 올리는 게 시장경제 체제에서 당연한 논리지만 세입자의 권리를 2년간 보장해주는 법체제에서 집주인이 이득만 챙기려는 것처럼 보였다. 뭐가 됐든 이런 집주인과의 관계가 좋을 리 만무했다. 무조건 2년짜리 집으로 알아볼 거라 했더니 그 즉시 공인중개사가 다른 매물을 알아봐줬다. 원래 매물보다 500만원 더 저렴한 1억5500만원의 2년짜리 집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인 '계약하기’에서 다루고자 한다)
참고 | 참고로 현장 탐방 기간에 미리 OTP 카드를 신청해두는 것이 좋다. 계약금을 이체하기 위함이다. 시중 은행 보안카드로는 인터넷뱅킹에서 회당 500만원, 하루 1000만원까지만 이체할 수 있다. OTP 카드를 등록하면 회당 5000만원, 하루 1억원까지 이체할 수 있다.
형태는 카드형보다는 고리형이 낫다. 아울러 카카오뱅크에선 비대면으로 OTP 카드를 신청할 수 있다. 시중 은행보다 다소 비싸지만(5800원), 은행에서 번호표뽑고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더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다.
독립을 결정하고, 전세 매물을 탐색하고, 집 계약하고, 이사하고, 살림살이를 채우기까지, 10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회사 근무 외 시간을 모두 독립 준비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세 계약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독립 선배 블로거의 글을 섭렵한 끝에, 어렵게 생애 첫 독립에 성공했다. 독립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 모든 과정, 에피소드를 글로 정리해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