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09. 감(感)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109.



상품기획자. 소위 'MD'라는 직업을 가지고 현업에서 일한지도 어느 덧 16년차다.

목표가 정해지면 판매할 상품에 대한 정보 수집/기획/디자인/제작/일정수립/배송/UIUX/사후관리 등 상품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력들을 모아 팀을 만들고, 프로젝트에 들어가 정해진 기간 내 상품을 세상에 내놓은 다음 매출로 평가를 받는 게 '상품기획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일이다.

사실 상품기획이라는 업무가 전문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는 룰(Rule)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일반 셀러리맨에 비해 업무 자율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100% 성과로 평가받는 일이기에 1.5배 업무량이 많다는 단점도 있다.

능력 좋고 업무 평가가 좋다면 소위 'Star MD'가 될 수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땐 길게는 몇 달씩, 매출 없는 '무직자' 신세도 버텨내야 하기에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상을 초월한다.

높은 업무량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직업이기에 부담스러운 잡(Job)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무(無)형의 아이디어가 상품이라는 유(有)형의 산출물로 탄생되어지고, 내 기획에 열광하는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MD의 세계는 유혹적이었다. 사내정치 없고,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감정노동 없이 오롯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프로기획자의 세계야말로 첫 직장(안정적이라는 지인들의 말만 듣고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버린 금융사였다)에서 감정노동으로 번아웃 상태였던 내겐 이상적인 노동 현장 그 자체였다.(물론 팀장급이 되어 버린 지금 여전히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기획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기 위해, 제작자가 디자인 된 결과물을 제품으로 개발하기 전에 그러니까 이 모든 작업자들의 결과물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분석하고 설계해서 튼튼한 골조를 만드는 일이다.

때문에 초기 기획이 잘못되면 업무의 방향이 잘 못 잡히고,

잘못된 디자인이 나오고, 잘못된 제품이 만들어지고,

기획의도와 전혀 엉뚱한 마케팅으로 이어지고,

종국엔 최종 소비자인 고객들의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는 '참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결국 소비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니즈를 분석하는 것도 상품기획자의 몫이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 도출도 상품기획자의 몫이며,

도출된 아이디어를 토대로 상품의 개발방향을 수립하는 것도 상품기획자의 몫이며,

기획한대로 결과물이 도출되도록 개발일정을 관리하고 소통하는 것 역시 상품기획자의 몫이며,

제품의 기획의도와 효용성이 고객에게 오롯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마케팅하는 것 또한 상품기획자의 몫이며,

팔린 제품이 기획 의도대로 고객경험을 제공하고 있는지 또는 불편사항은 없는지 개선사항을 수집하고 보완하는 것 역시 모두 기획자의 몫이다.

따라서 상품기획자는 처음과 끝의 방향성이 달라지지 않도록 프로세스 여정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녀야 하고, 프로젝트에 소속된 수 많은 협력자들과 일할 수 있는 '소통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앞의 이 두 가지 능력은 하루 아침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에 기본기에 해당하는 '전문성'을 개발하려는 노력 또한 필수다.

때문에 '기획자'라는 직업을 얻는 건 쉬워도 소위 '잘하는 기획자'가 되기란 정말 어렵다. '좋은 기획자가 프로젝트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초급 기획자 시절. 당시 내가 일하던 조직은 숙련된 시니어기획자와 초급기획자가 2인1조로 짝을 이뤄 일했다. 다시 말해 도제(徒弟) 개념으로 기획일을 배웠다 할 수 있는데,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할 수 밖에 없없다. 불행인지 다행힌지 당시 내 사수는 사내에서도 손꼽히는 소위 'Star MD'였다.

당시의 나로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의 일처럼 느껴져

'선배님은 원래부터 이렇게 잘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한 적도 있다.

그 선배는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는 듯 '응 나는 원래부터 잘했어'라고 답해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 그 선배는 다른 평범한 선배들과 뭐가 달랐을까?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 선배는 '감'이 좋았다. 아니 '감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감?'

제 3의 능력이기도 하고, 언어와 논리의 영역을 넘어선 본능적 영역의 감각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브라질 축구를 '동물적 감각에 의한 쌈바 축구'라고 부르는 것 처럼, 타고난 감이 뛰어난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감은 일종의 직관이자 기운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기획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으니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1.감은 통찰력에 기반한다

“어렸을 때 막연히 재미있고 좋아서 찍어갔던 점 들이 나중에 선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서 나는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가는 것이 성공의 법칙임을 깨달았다. 너무 전략적일 필요가 없다. 직관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살아라. - 스티브 잡스(Steven Jobs)”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감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방치하면 막연한 느낌이나 일시적인 운(運)으로 끝날 수 있지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꾸준한 자기계발과 훈련을 해나간다면 더 넓고 깊게 보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통찰력'이란 꿰뚫어 보는 힘을 말한다. 눈으로 단순히 '누구나 다 보는 것(=sight)'이 아니라, in(안을, 본질을) + sight(보는 것) '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 이른바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면 똑같은 사물, 사람, 상황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소위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 정도 되면 주변에서 '감 좋은 아무개'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2.감은 소통력에 기반한다

'감이 탁월하다, 느낌이 좋다' 는 말은 곧 소통 능력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이 소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상대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이다. 즉,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 그 과정 속에서 막힘 없이 서로의 생각이 잘 전달됨을 의미한다.

소통력이 좋다고 하면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 쉬운데, 통찰력과 마찬가지로 소통력의 근간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단순히 듣는 것(Hearing)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듣고 그 안에서 남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것들을 듣는( Listening) 능력이 생기면, 소통의 과정속에서 '본질적 문제'를 찾아내는데 탁웍한 능력을 발휘한다. 기획이라는 과정이 문제해결과정이라 점을 감안한다면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의 중요성이야 두 말하면 입 아프다.

3.소통력과 통찰력은 훈련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감, 느낌, 직관 같은 것은 타고나는 것. 일종의 선천적인 능력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일생 생활 속에서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산책을 하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오늘 우리가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얼마든지 감을 길러 삶의 통찰로 발전시키고 우리 안의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키울 수 있다.

그 첫 시작은 어떤 대상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감을 훈련하여 내공을 쌓으면 주변에서 '감 좋은 사람'이란 평가가 들려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도 강력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엔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숨겨져 있는 ‘감’이라는 원석이 있다. 이를 계속 방치해둘 것인지, 아니면 틈 날 때마다 갈고 닦아 주변을 횃불처럼 환하게 밝히고 빛나는 보석으로 완성시킬 것인지. 각자의 몫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지상에는 흥미없는 것은 없다.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G.K. 체스터턴


작가의 이전글010808. Motorcycle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