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717. 빅 아이디어 'Big Idea!'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by 사마리아인

0117.



주방 상품기획자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일명 '두유제조기'라는 아이템을 론칭해 소위 '대박'을 터트렸더랬다.

두유제조기란 전기포트와 믹서기(블렌더)가 합쳐진 간단한 원리로, 콩과 물을 넣고 작동시키면 내부의 회전 칼날이 가열과 동시에 콩을 곱게 갈아주면서 부드럽고 영양가 있는 두유를 만들어주는 제품이다. 매우 간단한 원리로 만들어진 제품이었지만 당시 론칭 방송에서 목표한 수량의 3배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업계에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가 지났을 때였다. 알고 지내던 주방업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MD님. XX 두유제조기 대박 났다는 소식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상품을 론칭할 생각을 하셨어요? 그거 몇 년 전에 나왔던 죽제조기랑 거의 똑같은 제품이잖요. 사실 저도 이 제품 다시 뜰 거라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XX사보다 자신이 먼저 생각했던 아이디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그럼 니가 하시지 그랬어요?'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말로 친한 분 마음에 상처를 줄까 싶어 그냥 웃어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두유제조기라는 제품의 원리는 몇 해 전 출시되었던 죽제조기와 똑같은 판박이 제품이 맞았고, 당시 죽제조기라는 상품을 만들어 소소(小小)한 판매실적을 기록했던 주방업체 대표 입장에선 '배 아플 만도 한 사건'이었을 테다.


상품기획자로 다른 수많은 경쟁관계 속에서 일하다 보면 '대박 냈다'보단, 소위 '대박 났다더라'라는 소식을 훨씬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아이디어들의 결과를 접할 때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와 대박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아이디어야!'라는 류의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별 것 아닌데' 혹은 '나도 생각했던 아이디어인데'라는 식의 것들이라는 게 기획자로서 솔직한 심경이다.

우리가 감동받는 아이디어들의 실체는 실패한 아이디어들과 생각보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 많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나도 한 번쯤은 예전에 생각해봤음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지루함마저 주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들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녀석의 실체다.

맞다. 좋은 아이디어란 우리 생각보다 파격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 새롭거나 파격적이면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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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Why)냐고?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두유제조기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당시 두유제조기 기획의 성공요인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1.건강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변화(헬시 플레저)

2.건강한 식단 수요 증가(단백질 & 비건)

3.간편함에 대한 니즈(간편함 + 홈메이트 트렌드)


놀라운 사실은 사실 과거에 판매되었던 죽제조기 제품에도 '두유제조'기능이 있었다는 점이다.

죽제조기 일부 제품에는 '죽'외에도 '수프', '두유' 제조 기능이 이미 장착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는 사람들은 '그거 예전에 죽제조기를 이름만 바꿔서 판매한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나는 주방상품 기획이라는 업무를 맡기 직전에 식품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던지라,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간단한 음료로 대체하거나, 탄수화물보단 채식과 단백질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식단 트렌드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 바로

'최근 변화하는 식문화 트렌드 속에서 굳이 죽제조기가 필요할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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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두유제조기능'이었다.

두유는 간단히 마실 수 있는 음료이면서, 최근 트렌드인 단백질 위주의 식단에도 맞고,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은 건강한 홈메이 트렌드로도 딱이었다.



나는 상품의 핵심 포인트를 '죽'에서 '두유'로 바꾸고 상품명부터 패키징, 기술서 및 방송컨셉 등 A부터 Z까지 '두유(건강함과 단밸질)'라는 소재와 '간편한 홈메이드(편리함)'라는 점에 포커싱을 맞춰 모든 기획안을 수정했다. 결과는 과거 한 물 갔다고 평가받던 '죽제조기'가 트렌드에 맞춰 '두유제조기'로 리브랜딩 되며 소위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이후 이미 시중에 나와 있던 '죽제조기' 상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두유제조기'로 탈바꿈 하며 수많은 밈과 미투제품이 양산되었고, 나의 두유제조기 대박 신화는 몇 달을 채 가지 못하고 희석되고 말았지만 내겐 나름의 '작은 성공 신화'로 남아 있는 사건 중 하나다.


상품기획자로 오랜 기간 동안 일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칭찬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나고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복기하다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늘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함'이란 토대 위에 '낯설음'이라는 양념을 한 꼬집 뿌린 정도가 '좋은 아이디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낯설고 새로워서 실패하는 아이디어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김치 맛 콜라' 혹은 '콜라 맛 김치'

센세이션 한 아이디어지만, 어떤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맞다. 아이디어란 그런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란 전혀 새롭고 뜬금없는 것이 아니다.
약간의 '낯설음'과 '공감'이 가는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다.

기획도 그렇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혁신'은 공허하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일본의 선술집 '누루칸 사토 이야기' 사례 또한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는 익숙한 행위 위에 '온도'라는 낯선 디테일을 더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리마커블(Remarkable)'한 무엇이 되는 것.

결국 아이디어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연금술이 아니다.

그것은 주변의 평범한 원석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어떤 온도로, 어떤 각도로 보여줄지 고민하는 '감(感)'의 영역이다.

'기획자라면 감(感)이 좋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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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보기 : 감(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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