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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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학생인 아이에게 게임코칭을 받고 있다. 요즘 대세 게임이라 일컬어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일명 롤(LOL)이라 불리는 게임이다. 아이와 친해져 보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 나이에 익숙치 않은 게임을 배운다니. 잘 될 턱이 있겠는가. 매번 팀 내 '구멍'으로 전락하는 기분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그래도 주말만 되면 '아빠 롤 한 판 하자'며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아들 녀석이 생겼다는 나름의 긍정적 효과도 있다.
아무래도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보니 게임 내 사건사고도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트롤링이다. 일명 게이머들 사이에선 '트롤짓한다'고도 표현하는데, 고의적인 패배 유도, 욕설과 비방, 팀워크를 방해하는 행위, 게임 중에 고의적으로 잠수를 타는 등의 비매너 행위를 통칭하는 의미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사실 트롤링은 일종의 '장난'에서 시작된 단어다. 진심으로 밉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가 학창 시절 친한 친구들을 놀리고 약 올리며 낄낄거리며 히히덕대던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트롤링이란 단어는 정치권에서도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트롤링'이란 단어가 인터넷 공간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한 유튜버(Youtuber)가 취임식 도중 찍힌 트럼프의 막내아들 배런 트럼프(Barron Trump)의 모습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 재확산되며, 갓 열 살을 넘긴 어린 소년에 대해 여러 가지 악소문이 떠돌았다. 결국 빌 클린턴 前대통령의 딸 첼시 클린턴이 “이 소년에게도 어린 시절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어린아이에 대한 ‘트롤링’을 자제해 달라는 성명을 내는 등 한때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자체도 트롤링의 귀재로 유명한 인물이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과 적대적인 정치인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것을 즐기는가 하면, 가짜 선동 뉴스를 확산시켜 정치적 공방을 일으키거나 프레임을 전환시키는 전략을 잘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롤링(Trolling)’이라는 말은 북유럽의 전설적인 설화의 주인공 '트롤(Troll)'에서 왔다. 트롤은 본래 북유럽 전설에서 유래한 못생기고 심술궂은 ‘도깨비’의 일종이다.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곳에서 산다고 하는데, 다리 밑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도 있다. 때문에 ‘트롤’은 괴롭힌다는 의미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마케팅 세계에도 이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장난처럼 경쟁사를 깎아내리거나 놀리는 방식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일컬어 ‘브랜드 트롤링’ 또는 '트롤 마케팅'이라 부른다. 본래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것이 없지 않은가. 거짓비방이나 허위사실 없이 세련된 유머감각으로 적정선만 지킨다면 소비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바이럴 하는데 이 만한 마케팅 전략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트롤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펩시'와 '코카콜라'를 꼽을 수 있다. 이 둘의 라이벌 구도는 이미 100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하다. 마치 100살 먹은 노인 둘이 아직도 내가 너보다는 실력이 낫다며 티격태격하는 듯하다. 그 외에도 역사 속 재미난 트롤링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1. 버거킹 vs 맥도날드
마케팅 역사에서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전쟁은 유서가 깊은 일화다. 끊임없이 도발하고, 도발하고, 또 도발한다. 버거킹의 Burn That AD 캠페인은 AR 기술을 활용해 버거킹 앱으로 맥도날드 광고를 카메라로 켜면 해당 광고가 불에 타 사라지고, 그 위치에 버거킹 광고가 나타난다. 참여자 전원에게 무료 와퍼 쿠폰을 제공했는데, 이 캠페인으로 앱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2.벤츠 vs BMW
BMW와 벤츠의 라이벌 관계도 유명하다. 2019년 핼러윈데이를 맞아 BMW는 SNS 계정에 벤츠 AMG E53 모델에 BMW M5 옷을 입힌 사진을 올리며 '모든 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슈퍼히어로로 변장할 수 있다'는 글을 남겨 큰 화제가 되었다. 이에 벤츠는 '정말 무서운 의상이다. 특히 그 라디에이터 그릴'이라며 당시 BMW의 논란이 대상이었던 거대한 그릴(키드니 그릴)을 조롱하듯 맞받아쳤다.
3.애플 vs 갤럭시
스마트폰 업계의 영원한 라이벌. 삼성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의 경쟁구도 또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애플이 아이패드 프로 광고에서 피아노, 카메라 등 창작 도구를 압착기로 부수는 영상('크러쉬' 광고)을 공개하자, 삼성은 갤럭시탭 광고를 통해 부서진 기타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우리는 결코 창의성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문구로 애플을 저격했다. 이 둘은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광고와 SNS에서 서로를 저격하고 조롱하는 밈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치밀하게 잘 기획된 '조롱'과 '시비'는 이렇듯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웃음'을 이끌어내고 이는 다시 브랜드에 대한 '열광'과 '확산'이라는 긍정적 효과로 선순환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효과는 또 있다.
1.브랜드 인지도 급상승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사실 맥도날드의 매출은 버거킹의 약 6-7배에 달한다. 맥도날드와 버커킹의 전쟁이 한창이던 2015년 맥도날드의 미국 내 매출은 354억 달러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중 1위였으며, 버거킹의 매출은 86억 달러로 4위에 불과했다. 어쩌면 '라이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거킹은 항상 맥도날드의 최고의 라이벌인양 맥도날드를 ‘트롤링’한다.
이 같은 구도를 통해 소비자는 자연스레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라이벌 관계라고 동일시하게 된다. 시장 부동의 1위가 맥도날드라는 것은 자타공인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버거킹은 자연스럽게 2등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4위였던 버거킹 입장에선 2위도 땡큐다.
2. 비용 대비 높은 효율성(Cost-Effectiveness)
복잡한 광고나 제작비 없이 재치 있는 한 줄의 트윗이나 사진 한 장 만으로도 대규모 미디어 광고 효과를 낼 수 있다. 대중의 공감을 얻은 트롤링 광고는 수많은 밈을 양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Controversial(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는 사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의견을 나누며, 공유하게 만들어 참여도를 폭발적으로 높이는 효과가 있다.
3.친근한 브랜드 이미지 확립
브랜드의 여러 덕목 중 SNS와 취향의 시대를 맞이하며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 있다. 바로 '브랜드의 친근감'이다. 위트 있는 트롤링은 해당 브랜드가 너무 진지하지 않고, 트렌디하며 유머러스하다는 인상을 주어 특히 젊은 세대(MZ세대)와 더 친밀하게 연결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광고 속에서 유머와 도발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명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튀는 행동을 통해 브랜드만의 독특하고 자신감 넘치는 페르소나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트롤 마케팅은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사람들이 당연히 ‘약자’, 즉 시장지분이 적은 쪽을 편들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하다가는 거대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성공하면 재치 넘치는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지만, 선을 넘거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단 얘기다.
1.적정선은 어디까지인가?
카타르 항공은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린 논란이 발생했을 때, 카타르 항공이 이를 활용해 "우리는 드래그 앤 드롭(끌어내리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식의 트윗을 올린다. 트롤 마케팅을 노린 행동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비극적인 사건을 마케팅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으며, 결국 사과글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만 실추시키고 끝이 났다.
2.단순 어그로인가?
롯데리아는 '롯데리아 버거 접습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제품 단종을 암시하는 어그로를 끌었으나, 실제로는 '폴더 버거'라는 신제품 출시를 위한 폴더형 홍보였음이 후에 밝혀졌다. 소비자들이 단종인 줄 알고 놀랐다가 기만당했다는 사실에 반감을 표시하며 '어그로가 너무 심하다'는 비난만 받고 끝났다.
코리아 버거킹의 뉴와퍼 론칭 마케팅 역시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버거킹은 한국 진출 40주년을 맞아 와퍼를 리뉴얼하면서,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40년 만에 와퍼 판매를 종료한다'는 문구를 게시한다. 단순히 리뉴얼 소식을 알리는 것보다 '단종'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후 '뉴와퍼' 출시로 화제성을 극대화하려는 노이즈 마케팅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소비자 우롱이라는 비난으로 일단락되며 브랜드 신뢰도만 까먹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은 단지 약자여서가 아니라 약자가 바로 피해자일 거라 생각해서 편드는 것이다. 언더독 효과만 믿고 잘못 처신하다가는 가학적 권모술수를 쓰는 ‘사악한’ 브랜드로 인식될 수도 있다.
지난 일기에서 다룬 ‘골디락스(Goldilocks)’의 개념을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뜨거우면(공격적이면)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너무 차가우면(조심스러우면)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는 실패한 기획이 될 수 있다. 대중이 '오, 센스 있는데?'라고 무릎을 칠 수 있는 ‘딱 적당한(Just right)’ 선을 찾아내는 것이 기획자의 진짜 실력이 아닐까 싶다.
바야흐로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다.
예산이 없어서 기획을 못 한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기획자라면 주목해 보자.
0원에 가까운 비용으로 수십억의 광고 효과를 내는 마케팅 트롤링은, 어쩌면 기획자의 순수한 ‘기획력’과 ‘위트’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 기획은 고객의 옆구리를 찌를 만큼 흥미로운가?
가끔은 점잖은 정장을 벗어던지고, 유쾌한 트롤러의 가면을 써보는 건 어떨까.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싸우지 않고 이기지만, 위대한 기획자는 싸움을 축제로 만든다.'
- 사마리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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