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노릇하느라 힘든가요?
1
지하철 막차에서 내려 밤길을 걷는다
커피와 니코틴 그리고 피곤에 절은 몸
학대받은 자아를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불꺼진 집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지만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적막감만 맴돈다
평온한 꿈나라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인지
방문은 닫혀있고 소리내지 않으려 조심 또 조심한다.
2
홀로 방에 앉아 잠들지 못한 자아에게
공허함과 부끄러움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이들의 속삭임에 흔들리고 싶지않아
철학책을 펴들고 도피를 감행한다
밑줄을 치고, 문장을 배껴쓰면서도
가녀린 자아의 무게는 가볍기만 하다
고요한 밤 깊어져, 억지로 누워 뒤척이나
깊은 안식을 취하지 못한 채 깨어나
주섬주섬 출근준비로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
3
현관문을 나서며 자아에게 묻는다
이것이 원하던 삶인가?
답하기를 주저하다,
서둘러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2014. 4. 2. 질문술사
인정받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어느 가장의 삶에 다시 묻다
꽤 오래전 끄적인 시를 다시 읽고 옮겨본다. 힘겹게 살아가는 가장들의 어깨, 가족의 삶에서도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 시대 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빠의 불면증은 꽤 오래 되었다. 다른 길이 있는지도 모르나, 다른 길을 찾을 여력도 없는 불쌍한 자아와 함께 살아가는 벗들과 조금은 음울한 시를 나누고 싶다.
이 시는 어쩌다 준비없이 어른으로 살아야했던, 어린 나를 다독이며, 혹은 울먹이며 썼던 자전적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