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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시작

질문술사 시인박씨의 일상 + 詩 하루

: 어느 가을의 하루 _ 24개의 소소한 기록을 남겨두다

by 삼봄
오늘은 당신의 일상을 소개해 주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어떤 소소한 이들이 일어나나요? 코로나로 자칫, 나의 일상이 흔들릴 수 있지만 나의 작은 하루를 크게 얘기해 주세요.
________ by 록담
사람들에게 질문을 선물하는 일이 저의 일인데, 코로나 19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요즘 제 본업에 조금 지쳐있는 상태랍니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다른 분이 주는 질문에 응답하는 역할로 변화를 줘 보기로 했습니다. '록담'님께서 '카카오 프로젝트 100' 플랫폼을 활용해, '100개의 질문, 100번의 생각'을 진행한다고 하셔서 냉큼 지원했습니다. 이 기록은 지난 9월 23일(수), 17일 차 기록을 정리해 본 글입니다. 궁금해할 독자들은 거의 없겠지만, 저의 일상을 하루 종일 기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남겨둡니다.
시작하기 전에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최근에 록담 님의 질문에 답해둔 인터뷰 글로 대신합니다.




질문술사 시인박씨의 '하루'



[01:05] 1. 밤 1시 조금 넘어서까지 랜선 독서 모임 과제를 올리고, 100일 질문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신 분들이 올린 글을 읽었습니다. 아직 17일 차 질문 주제가 등록되지 않았지만 일단 인증. 1등 놀이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학창시절엔 전교 1등을 한 번도 못 해봐서, 이런 곳에서 선착순 1등 놀이를 하고 놉니다.

[07:30] 2. 간밤에 잠을 설쳐서 조금 늦게 일어났네요. 고2 첫째가 가장 먼저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서네요. 잘 다녀오라고 인사합니다. 심리상담 일을 하는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고 있어서, 옆에서 종알종알 대화를 하다가, 버스 타는 곳까지 마중을 나갑니다. 출근하는 아내를 보내고 난 후에, 100일 질문을 확인합니다. 하루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미션이군요. 오늘 하루 틈틈이 기록하고 수정해보겠습니다.


[08:00] 3. 오늘 일정과 할 일 들을 다시 한번 검토해 봅니다. 랜선 독서 모임 일일 과제가 하나 있고, 오후에 가산동에서 리더십 코칭이 하나 있습니다. 4명의 리더와 1명의 실무자가 참여하는 소그룹으로 진행됩니다. 저녁엔 TOC Forum이라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모임이 있는데, 코로나 19 이후 오프라인 모임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줌 온라인 라이브로 클래스로 진행해야 합니다. 퍼스널 애자일과 TOC(제약이론)이 주제입니다. 오늘은 발표자 역할을 맡아주시는 분 사무실 근처로 이동해서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살짝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군요. 마음이 살짝 분주해집니다.


[08:30] 4. 중2 둘째는 오늘도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홀로 머뭅니다. 수업 끝나면 뭐 하는지 물어봅니다. 아침을 챙겨 먹습니다. 집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은 저 밖에 없어서.....


[09:00] 5. <혼자서>라는 제목의 나태주 시인의 시 한 편 필사해 영상으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냅니다.


[10:00] 6. 저녁 7시에 있을 줌 미팅 참가 신청자 현황을 다시 봅니다. 참가자 모두에게 안내 문자를 보내 두고, 구글 신청서에 적힌 그분들의 참가 동기와 질문들을 다시 정리합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해서 대략 35분의 참가자를 초대합니다. 참가자 중 1분이 카톡 아이디가 없는지 초대가 안되네요. 일단 여기서 일을 마무리 해 두고, 오후 코칭을 위해 이동합니다. 수락산 자락에서 가산동까지 지하철 7호선을 타고 1시간 반 가량 이동합니다.


[11:30] 7. 지하철 이동하면서 오늘 저녁 포럼 발표자가 번역한 책을 다시 꺼내 살펴봅니다. 저녁에 직접 만나는 것이 조금 무리란 생각에 발표자에게 연락해,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접속하자고 양해를 구합니다. 얼굴도 보고 저녁을 사 드리기로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동시에 무리하게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니, 마음이 살짝 여유로워집니다.

<퍼스널 애자일, 퍼스널 칸반> _ 짐 벤슨 지음, 박성진 옮김

[12:20] 8. 지하철 이동 중 맥북을 꺼내 일을 합니다. 어제 코칭받으신 리더가 요청한 자료 하나 보내고, 오늘 그룹코칭 시 활용할 질문 노트 양식 몇 개를 수정하고, 담당자에게 사전 인쇄를 부탁해둡니다. 지하철에서도 일하는..... 다시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이동합니다. 어제 100질문 멤버들이 선곡해 주신 음악들이 있으니 좋군요.


[12:40] 9. 점심을 먹기엔 시간이 여유롭지 않네요. 오늘도 에너지 바를 점심 삼아 먹습니다. 꽤 맛있습니다.


[13:00] 10. 그룹 코칭 시작 _ 일 경험 성찰 카드로 일상을 나누면서 시작. 리더가 최선을 다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6:30] 11. 그룹 코칭을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가족 톡 방을 보니, 첫째가 가지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네요. 삼만 원이 넘어가는 책이라 엄마나 아빠가 사 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림 하나 그려주면 사 주겠다고 밀당을 주고받는 중입니다. 이미 책은 구입해두었지만, 올해도 그림 한 점 확보해야겠어요. 부모 자식 간에도 공짜가 없는 냉혹한 아빠 역할에 잠시 머무릅니다.


[16:35] 12. 10월 예정되었던 강의 하나, 일정이 변경되었다고 연락이 옵니다. 이미 선약이 잡혀 있는 날짜라 다른 날짜 알려달라고 다시 연락드립니다. 코로나 19 이후 변동성은 커졌으니, 그러려니 하고 서로를 배려해주게 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이 살짝 올라옵니다.


[16:45] 13. 12월 퍼실리테이터들이 모이는 컨퍼런스에 발표 요청을 받았습니다. 주제는 마음에 들지만, 일정이 겹치네요. 아쉽지만 초대해주셔서 고맙지만, 함께하지 못해 송구하단 연락을 드립니다.


[17:00] 14. 저녁도 혼밥입니다. 오늘은 고객사 근처에서 정갈한 해물볶음밥을 사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는 어제오늘 만난 리더들에게 코칭 세션에서 언급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님의 책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개정판 제목은 ‘하버드 인생학 특강’> 링크를 다시 보냅니다. 리더로서 더 좋은 평가기준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코칭 후 실천과제를 정리해볼 기록 양식도 첨부해 보냅니다. 코치로서 좀 집요한 것 같지만, 바쁜 리더들에게 리더로서 더 좋은 리딩 방식을 고민해보라고 버티고 또 버팁니다. 긴급한 일들에 중독된 관성을 끊어내는 것은 쉽지 않으니, 저항에 굴하지 않고 조금 귀찮은 쇠파리 역할을 기꺼이 수행합니다.


[17:15] 15. <다섯 손가락 질문 카드>를 출시해주신 학토재에서 추석 감사 문자를 보내왔네요. 집으로 선물로 택배를 보냈다고도 합니다. 개발자들을 챙기는 대표님께 고마움 담아 짧은 문자 하나 보냅니다. 저녁 모임이 있어 마음이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통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17:25] 16. 다시 그룹 코칭을 진행했던 미팅룸으로 복귀해서, 코칭하면서 끄적여둔 메모를 살펴봅니다. 기록들은 촬영해서 정리해 두어야 다음 코칭 때, 이를 반영해 이어갈 수 있습니다. 기억은 점점 믿을 것이 못 되니, 기록을 간단히라도 남겨두어야지요.

코칭 일정 변경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본부장이 있어서, 일정을 다시 잡습니다. 아직 오후 코칭 세션의 대화가 남긴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저녁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모드를 변경해야지요. 살짝 오후의 여운이 빠져나가도록 쉼을 갖습니다.


[17:45] 17. 오늘의 일상을 돌아보라고 해서인지 ‘하루’라는 한 단어를 붙잡아, 끄적끄적 생각의 흐름을 따라 시 한 편 끄적여봅니다.

초고가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방금 끄적인 시도 맘에 들지 않습니다. 시를 또 머리로 썼습니다.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가야 가슴에 스며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책에 빠집니다. 그래도 뻔뻔하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방금 끄적인 시를 사진으로 찍어둡니다.


[17:55] 18. 오늘 한 번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은 듯해서 잠깐 밖으로 나옵니다. 가을 가을한 하늘, 구름을 잠시 쳐다봅니다. 그리고 벗들과 함께 머물고 싶은 질문을 카드로 만들어둡니다.


[18:10] 19. 퇴근한 아내와 잠깐 통화를 합니다.


저는 발표자가 아니라 진행자입니다 ^^;

[18:50] 20. 줌을 열고 포럼 참가자를 맞이합니다. 본래는 정기 오프모임이지만, 온라인으로라도 얼굴 뵐 수 있으니 좋네요. 오늘 모임은 박성진 님이 '퍼스널 애자일과 제약이론(TOC)'을 주제로 발표해주셨습니다. 밈(Meme)의 관점에서 애자일 문화와 방법론의 도입을 바라보고, 퍼스널 칸반에 녹아있는 제약이론(TOC)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주셨습니다.


[21:25] 21. 정해진 포럼 시간은 끝났지만, 몇몇이 남아서 담소를 나눕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온라인 라이브 클래스에 참가자 모두 집중해 참가해주셔서 보람을 느낍니다. 포럼을 닫고 이제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22:03] 22. 가산동에서 수락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내일 그룹 코칭 참가자가 사전 실천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살피고, 독려 작업을 해 둡니다. 늘 바쁜 리더들이라 깜빡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두 번 세 번 다시 안내해야지요. 오늘 밥 한 끼 함께 하자는 약속을 했지만, 제 개인 사정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걸 다시 생각해내고, 고마운 마음 담아 카톡으로 펭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하나 보냅니다. 마음이 살짝 가벼워집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을 물건으로 대신할 수는 없으니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고 직접 찾아가야지 하며, 할 일 리스트에 다시 기록해둡니다. 22:07분 지하철이 도착해 이제 늦은 밤 집으로 향합니다.


[22:58] 23. 유영만 교수님의 신간 <책 쓰기는 애쓰기다>함께 읽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꽤 많은 이들이 함께 읽기를 하고 계신데 오늘이 3일 차입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같은 조에 속한 분들이 남긴 기록을 읽어보고 댓글 하나씩 남겨봅니다. 에너지가 고갈 직전이라 100일 질문 멤버들 글에는 댓글을 남기지 못하고 읽고 좋아요만 하나씩 눌러둡니다. 이젠 집에 도착할 때까지 100일 질문 멤버들이 선물해주신 음악 듣고 쉬어야겠어요. 아마 잠들기 전에 다시 기록을 남기진 못할 듯합니다. 그래도 12시 전에는 집에 들어갈 수 있겠네요.


[23:45] 24. 귀가 완료! 모두 평안한 밤 되시길~

이상 질문술사 시인박씨의 시시콜콜 + 살짝 미화된 일상의 하루 기록이었습니다.






하루


누구에게든 주어진 하루

어떤 이에겐 버거운 시간

거창한 이상을 추구하긴 짧고

여여한 일상이 이어지는 낮과 밤



보람된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루하게 반복된다고 투덜거리기엔

또 다른 하루가 내게 허락될지

알 수 없고, 확신할 수도 없다네



오늘 스친 인연들, 귀한 줄 모른다면

내일 하루도 별다를 바 없을 지다




2020년 9월 23일(수)

질문술사 시인박씨의 일상을 기록해두고,
'하루'라는 시시한 시 끄적여 두다
드디어 오늘자로 브런치에 시 200편을 올렸습니다. 사실 연작시나 숨어있는 시가 꽤 되니 진즉 200편은 넘었겠지만, 그래도 숫자로 표기되니 뭔가 감회가 새롭고 셀프 축하라도 해야 할 듯 합니다. 출간된 시집 <다시, 묻다>에 실어둔 80편 외에도 120편의 시들이 넉넉히 담겨 있으니 종종 들려서 시인박씨의 시시한 시 읽다 가셨으면 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q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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