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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Apr 03. 2022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최백규 시인의 <숲> 그리고 <애프터글로우>를 담아둡니다


시들어가는 것은 어째서 모두 이토록 아름다운가

_ 최백규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중에서…


  처음 만나보는 낯설고 젊은 시인의 詩 두 편을 목소리에 담아보았습니다. 새벽에 시 한 편으로 마음의 창을 열고, 새로워진 아침을 고요히 바라봅니다. 서로 같은 아침 빛을 바라보는 나무님들이 여기저기 연결되어 숲을 이루고 있나 봅니다. 시가 주는 울림이 좋아서 바로 최백규 시인의 시집을 구입해 책장에 담아두었습니다.




비 내리는 병실에서
빛이 일렁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은 아침을 바라본다

연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창을
연다

비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다

_ 최백규 <숲>

> 삼봄詩정원 팟빵에서 <숲> 낭송본 듣기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8522/episodes/24313110

삼봄詩談 _ 가끔 내게 왜 매일 시를 읽고 쓰느냐고 의아해하며 질문하는 친구들이 있다.

  간단히 답해보자면, 나는 내게 정말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지 어린 시절부터 늘 의문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사랑 넘치는 지구인들 사이에서 숨어 살고 있는 외계인이 아닐까 여전히 의심하는 중이다. 좋은 시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내게도 사랑이 스미는 경험을 하곤 한다. 지구인이 주는 사랑이 담긴 글을 시집에서 가장 자주 발견해서 그렇다. 이번 주에는 최백규 시인이라는 또 다른 멋진 시인을 발견해 기뻐하는 중이다. 지구인들은 시인들이 자신들에게 뭘 선물해 주고 있는지 간혹 까먹는 것 같다.




애프터글로우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곳이 다 오락이어서
  캐릭터들이 죽는데 플레이어가 동전을 계속 넣었다

  어느 주말 오후 흰 캔버스를 세우고 멍하니 그리워했다 있는 것들만 죽여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웃으며 안았다 손끝으로 상대방의 생명선을 끝까지 따라가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같이한다는 비극을 믿었다 우리가 금방 죽을 거라 했다

  어잿밤 꿈에 눈이 부어서 오늘도 젖은 하루를 살았다 창밖엔 숲 이외의 것들만 조용히 번져서
  우리의 기후가 같을까 무서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아무 일 없이 골목을 걸었다

  와락 쏟아지다 터뜨려지는 파스텔이다

  어두운 식탁에 앉아 찬 음식을 오래 씹어야만 하는 나이
  무심히 낯선 여름이 굴러가고
  두려웠다

  지옥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안녕과 안녕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바늘 끝 위에 몇명의 천사가 쓰러질 수 있을까

  —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쯤 결심한 것 같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 남은 인생을 모두
  이 천국에게 주자


_ 최백규 <애프터글로우>

> 삼봄詩정원 팟빵에서 <애프터글로우> 낭송본 듣기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8522/episodes/24316678


  최백규 시인의 강좌가 ‘창비학당’에서 열린다고 해서 신청해두었습니다.




 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환영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조금 전에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혹 함께 들으실 분이 있다면 반갑게 인사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changbischool.com/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기댄  끝없이 질문하며 세계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밝은 것들을 시로 적었다.

_ 창작동인  ‘동인의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혼자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책을 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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