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봄 Sep 09. 2023

결핍에 대하여 _ 정호승

삼봄詩 필사노트 230909

밤하늘은 자신의 가슴을 별들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
별들도 밤하늘에 빛난다고 해서 밤하늘을 다 빛나게 하지 않는다
나무가 봄이 되었다고 나뭇잎을 다 피워 올리는 게 아니듯
새들도 날개를 다 펼쳐 모든 하늘을 다 날아다니는 게 아니다
산에서 급히 내려온 계곡의 물도 계곡을 다 채우면서 강물이 되지 않고
강물도 강을 다 채우지 않고 바다로 간다
누가 인생의 시간을 가득 다 채우고 유유히 웃으면서 떠나갔는가
어둠이 깊어가도 등불은 밤을 다 밝히지 않고
봄이 와도 꽃은 다 피어나지 않는다
별이 다 빛나지 않음으로써 밤하늘이 아름답듯이나도 내 사랑이 결핍됨으로써 아름답다

_  정호승 <결핍에 대하여>


오만한 삼봄씨는 종종 최선을 다하지 못하거나, 뿌듯함을 느끼지 못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올라오면,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며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심판자 모드에 빠져서 나 자신을 힐난하는 못됨이 있다. 나의 초라한 활동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벗들을 둘러싼 세계에 빛과 온기를 충분히 더하지 못했다며, 코치로서의 영향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곤 한다. 허나 대부분의 일상은 초로하고 별 볼 일 없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내 주위의 착한 벗들은 나의 못남과 부족함을 특별히 힐난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내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삶 전체를 밝히지 못하겠지만,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 만이라도 온기를 잃지 않는 인간이 되길 바란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한 가지 일에라도 정성을 기울이는 인간이길 바란다. 근 한편을 아름답게 완성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겠지만, 한 글자라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끄적이길 바란다. 결핍과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회피하거나, 억지로 변형시키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이길 바란다. 그렇다. 어리석은 삼봄씨는 여전히 이렇게 오만하고 부족하고 욕심 많은 결핍된 존재다.


||| 삼봄詩 필사노트 230909 #정호승 #결핍에대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박성우 시인의 바닥과 정호승 시인의 바닥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