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 Bright Jan 15. 2020

한옥 평생, 최기영 대목장.interview

천 년 가는 자연의 집

대목장은 나무를 소재로 집을 짓는 사람으로, 나무를 다듬고 집을 설계하는 것부터 공사의 완성까지 책임진다. 한옥 건축 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대목장은 현재 국내에 단 3명만이 존재한다. 최기영 대목장은 1961년 도편수 김덕희, 김중희 선생께 사사 받으며 목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국보급 사찰을 복원해온 그는 2000년 무형문화재인 대목장에 지정되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일평생을 한옥에 바친 명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좋은 나무를 골라내고 잘 말려 가공하는 것은 목공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이다. 최기영 대목장이 직접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 Studio Kenn

첫 발을 내딛다


최기영 대목장의 인생은 시작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그가 태어난 1945년,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으나 곧 한국전쟁으로 나라는 또다시 커다란 혼란을 겪었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일가족은 가난에 허덕였다. 초등학교는 가까스로 졸업한 그는 종일 산에 가서 나무하고 들에 가서 가축들에게 먹일 꼴을 벴다. 어른이든 아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겨우 목구멍에 밥 한술 넘길 수 있는 때였다. 그러면서도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부터 맹자까지 한학을 배운 것이 훗날 그가 전통 건축을 배울 때 도움이 됐다. 그가 목수가 되기로 한 것은 서당의 훈장님 아들이 목수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자기 기술을 가지고 먹고살 수 있다는 것, 그때는 그게 그에게 그렇게나 절실하게 다가왔다.


"목수가 되고 싶은 거창한 이유는 없었어요. 내 재주로 먹고살기 위해서, 배를 채우기 위해서 목수 일을 배웠지. 그런데 하다 보니까 끼가 조금 있어서 남보다 좀 앞섰고,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오늘이 온 겁니다. 산전수전 안 겪은 일이 없지만, 목수 일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최기영 대목장의 일생이 담긴 기구들이 전수관 벽면에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 Studio Kenn

열정으로 성장하다


최기영 대목장은 어려서부터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은 자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목수인 김덕희, 김중희 선생을 만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어도, 그가 신참 때부터 남들보다 빼어난 손재주와 눈썰미를 갖춘 것은 실은 타고난 것이었다. 한 번 보고 듣는 대로 손이 척척 따라갔다. 낯선 연장이 손에 금방 붙었다. 당시 목수들에게 교과서는 물론이고 일대일로 스승이 가르쳐주는 법도 없었다. 일하면서 곁눈질과 어깨너머로 스승의 비법을 직접 배워야 했는데, 그의 재능이 빛을 발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듣고 보니 그의 아버지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목수였다고 하는 걸 보면, 피는 속일 수 없나 보다. 스승을 따라 전국을 떠돌며 강원 평창 월정사부터 서울의 덕수궁까지 수많은 건물을 마주했다. 스승이 한지에 도면 그리는 광경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밤중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궁궐의 담장을 넘나들기 일쑤였다. 전등으로 처마와 기둥 등을 비추며 생김새 하나하나 암기했다. 손전등이 없으면 달빛에 종이를 비추며 어른거리는 건축물의 윤곽을 필사적으로 남겼다. 


“그냥 배우면 평생 평범한 목수가 될 뿐입니다. 처음 목수 일을 배울 때 50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도편수가 된 이는 일부이지요. 다른 사람이 잘 때 생각하고 도면이라도 그려보고 구조를 맞춰보고 자면서 꿈에서라도 연구하는 사람이 도편수가 되는 것입니다. 대목장은 기둥 크기나 공간의 높낮이, 너비를 다 고려해 집에서 살아갈 사람의 삶까지 설계하는 목수지요.”



최기영 대목장이 직접 제작한 한옥 축소모형이 여럿 전시되고 있다. 몇몇은 다른 장소에 초청전시 중으로 볼 수 없었다. 사진은 월영교의 축소모형. ⓒ Studio Kenn

천 년을 향하다


1200년경, 고려대에 지어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국보 15호)이다. 최기영 대목장이 이 건물을 완전히 해체해서 보수하고 다시 조립했다. 천년을 바라보는 옛 한옥이 오늘날 꼿꼿한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것은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 덕분이었다. 온갖 한옥을 짓고 보수하느라 평생을 쓴 그는 올 겨울에도 연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찬 바람 나고 습기는 적은 겨울이 한옥 건축의 적기인 탓이다. 과거의 도편수들은 10월 말부터는 본인이 아끼는 제자 몇 명을 데리고 겨우내 일했다고 한다. 토목공사는 땅이 완전히 얼기 전에 시작된다. 동절기가 되기 전 주춧돌에서 기단 작업을 해둔다. 겨울엔 나무를 손질하는 동시에 건조 작업이 진행된다. 3월 전까지는 목재를 조립하고, 장마가 오기 전까지는 기와를 씌워야 한다. 마무리인 미장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추석 전후다. 이때는 새벽에 내린 이슬이 벽채에 스미고, 낮에는 건조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다른 시기에 벽을 바르는 것보다 균열이 적다. 머릿속에 이미 건물이 우뚝 선 채다 보니, 목수의 손은 한파에도 움츠러들 겨를이 없다.


"자연이 만든 한옥은 사람과 함께 천 년의 세월을 거뜬히 이길 수 있어요. 한옥이 어떻게 천 년을 가냐고요? 그건 먼저 한옥에 쓰이는 모든 재료가 자연에서 온 것인 덕분이고, 다음으로는 목수가 원칙과 원리를 지켜 쌓아 올린 덕분입니다. 한국 소나무, 흙, 돌, 기와, 창호지 모두 자연에서 온 것이지요. 자르고 깎아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어요. 기와도 숨을 쉬고, 잘린 소나무도 살아서 '송진'이라는 피가 계속 흐릅니다. 이 한옥에서는 자연의 숨결을 들을 수 있어요. 시간이 가면 아무리 잘 지은 한옥도 흙벽에 금이 가고 나무도 갈라질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가꾼다면 넉넉히 천 년을 갑니다. 후대에까지 길이 전해질 거예요. 



최기영 대목장이 직접 만든 한옥 모형 앞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 Studio Kenn


최기영 대목장

2010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전면 해체 보수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00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인정

2000~2010년    충남 부여 백제문화단지 조성 공사

1977년    문화재청 지정 문화재 수리 기능자 ‘목공 제407호’ 인정

1961년    목수 입문




[월간 KOREA 2020-01 Inside View 최기영 대목장] 사진 STUDIO KENN 글 SAM BRIGHT

월간 KOREA 웹진에서 더 다채로운 사진을 만나보세요. > 바로가기
본 게시물은 KOREA 홍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글과 사진의 가공/사용이 불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품 한옥 스테이 4선.spotligh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