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 Bright Jan 15. 2020

역사가 만든 밀면.flavor

냉면과 뭐가 다른지 먹어보기 전에는 몰라요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냉면과 모양은 비슷한데 맛이 다른 음식이 있다. 바로 밀면이다. 그리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굵기의 국수에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부어 먹는데, 가게마다 육수가 다르고 맛도 조금씩 다르지만 밀가루로 뽑은 면에 (주로) 돼지고기 육수를 쓰면 일단 부산 밀면이라고 부른다. 함흥에서 부산까지 피난 온 이들이 냉면 대신 만들어 먹었다는 밀면은 오늘날 부산의 향토음식이자 꼽히며 꼭 맛봐야 할 대표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 Studio Kenn

밀면의 탄생


우선 냉면과 밀면의 명칭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둘 다 면이 주가 되는 음식인데, 냉면은 면을 뽑을 때 메밀을 주로 쓰고 밀면은 밀가루를 주로 쓴다. 일반적인 냉면과 별개로 경기도 향토 냉면도 따로 있다. 조선 시대부터 기록으로 전해지는 진주냉면과 사천냉면이 그것이다. 육전과 해물 육수를 사용해, 요즘 흔히 알려진 냉면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요리로 봐도 된다.


육수와 면으로 간단히 완성되는 요리지만 부산에서 밀면이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실향민의 아픈 추억이 잔뜩 녹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까지 피난을 와서 정착한 실향민들이 북에서 먹었던 함흥냉면의 맛을 그리워하며 냉면을 만들어 먹었던 게 시작이었다. 냉면을 만들 때 쓰는 메밀은 당시 전쟁통으로 난리인 부산에서는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만들 때 손도 많이 갔다. 정작 부산 사람들은 메밀로 만든 면에 익숙하지도 않아 여러모로 인기가 없었는데, 미군의 밀가루 대규모 원조로 이전 시대엔 귀한 재료였던 밀가루가 남아돌게 되면서 메밀 대신 밀가루로 면을 뽑게 되었고 지금까지 부산 지역민의 사랑을 받으며 아예 ‘밀면집’이 즐비하게 된 것이다.


차가운 면 요리인 냉면에서 시작해 밀가루 면으로 진화한 밀면은 비록 그 역사는 짧지만 오늘날까지 대중적인 맛으로 냉면과 완전히 다른 요리이자 부산의 향토음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 Studio Kenn

밀면 맛집을 찾아서


부산 곳곳에 대중교통이 발달해있고, 구석구석 유명한 관광지가 많기 때문에, 향토음식인 밀면도 덩달아 외지인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밀가루를 쓰는 덕에 냉면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경상도 스타일로 다진 양념이 들어가 맛의 개성이 확실한 것도 밀면의 인기 상승에 한몫했다.


인터넷에 밀면 맛집을 검색하면 부산의 3대 맛집 혹은 5대 맛집 등 여러 식당이 나오지만, 그 맛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덕분에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밀면 맛을 비교해보는 것도 부산 여행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부산 밀면의 원조로 알려진 내호냉면은 부산 사람들도 자주 찾기 어려운 동네 골목에 있는데, 처음 가게를 낸 정한금 할머니의 유언이 ‘가게를 옮기지 말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호가 냉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양냉면에 더 가까워 일반적인 밀면집보다 더 심심한 맛이 특징이다. 한약재를 쓴 밀면집도 있고, 딱 80년대 스타일로 설탕을 많이 뿌려주는 집도 있어 정말 각양각색의 밀면을 가게마다 맛볼 수 있는데, 국제밀면은 양념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매콤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특징이다.

 

밀면은 월간 KOREA 2019-11월호 부산 특집편에 소개됐다.



다시 찾게 되는 부산의 맛


밀면의 종류는 육수에 말아 먹는 물밀면과 양념장에 비벼 먹는 비빔면 2가지가 있다. 재료에 특별한 차이는 없고 일반적으로는 육수를 부으면 물, 물 대신 빨간 양념을 많이 넣으면 비빔이라고 보면 된다. 냉면과는 달리 물밀면에도 양념이 조금씩 들어가는데, 평양냉면처럼 깔끔한 육수 맛을 먼저 느끼고 싶다면 양념장을 덜어내고 먹어봐도 무방하다.


ⓒ Studio Kenn

무를 얇게 썬 무김치가 거의 모든 식당에서 공통으로 반찬으로 나오며, 따듯하게 데운 육수도 따로 달라고 하면 주전자로 컵에 따라준다.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쫄깃하게 뽑아낸 면발에 참기름을 두르고 채 썬 오이와 양념장 그리고 삶은 계란 반쪽을 얹어준다. 결을 따라 찢어지는 장조림용 고기가 고명으로 나오는 곳도 있고, 두툼한 고기 조각이 들어가는 데도 있다.


둥글게 뭉쳐진 밀면을 젓가락으로 휘휘 풀어 후루룩 빨아 당기면 고소하고 매콤한 양념 국물이 같이 입에 들어온다. 밀가루로 만든 면은 가위로 자르지 않고 먹는 게 맛있는데, 가위로 잘라낸 면에 물이 스미게 되면 끈기가 사라지고 쫄깃한 맛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애써 쫄깃하게 내온 면발을 무심하게 가위로 잘라내기보다는 적당히 집어 한 번에 해치우는 게 밀면 한 그릇을 끝까지 맛있게 먹는 팁이라고 주방장들이 입을 모은다. 차갑게 나오는 면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한 번 맛보면 잊지 못한다는 밀면,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월간 KOREA 2019-11 Local Taste 밀면] 사진 STUDIO KENN 글 SAM BRIGHT

*월간 KOREA 웹진에서 더 다채로운 사진을 만나보세요. > 바로가기
*본 게시물은 KOREA 웹진 홍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사진과 글은 원작자의 동의 없이 재사용할 수 없음을 안내 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옥 평생, 최기영 대목장.interview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