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둥둥 내 사랑

가슴에 새긴 기억

by 투명물고기

어부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짧지만 그 안에는 세월과 사랑이 다 들어 있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엄마를 키운 포대기로

손주를 다시 업는 장면 속에,

세대를 이어 흐르는 마음이 담긴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어부바는 내 비밀 병기였다.

“양철 로봇 맘”은 아이 마음을 읽는 기능에 종종 제한이 걸려 곤란했다.

어르고 달래야 할 때면, 나는 아가띠의 버클을 채우고

말 대신 등을 내주었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감응하는 언어를 몰라서.

덮어놓고 업고, 노래 부르고 춤추면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었다.

알면 물으면 되고, 울면 기다리면 되는 걸.


아빠는 미남이었다.

이혼 후에도 그의 얼굴만큼은 칭찬했던 엄마가 증명한다.

내 기억 속의 부모는 늘 따로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빠의 멋을 사랑했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 가죽을 바느질해 만든 가방,

우표와 동전 수집으로 어질렀던 방.

그날, 햇살 내리던 회현동 역 앞에서

아빠와 함께 산 구론산 바몬드는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흔한 박카스 대신 멋진 이름의 갈색 병을 고르는 아빠가

그저 자랑스러웠다.

다시는 마시지 않는다. 혹여 그 맛이 달라 기억에 흠집이 생길까 봐.


가장 선명한 장면은 따로 있다.

한참을 걸은 끝에, 아빠가 나를 업어주었다.

뚱뚱한 내가 무거워 걱정됐지만,

내리고 싶지 않아 숨을 참으며 몸을 더 가볍게 만들었다.

그날의 햇살은 지금도 내 안에서 몽글몽글 피어난다.

혹시 기억이 왜곡된 건 아닐까 두려웠는데,

귀가하던 153번 버스 안에서 확신을 얻었다.

아빠는 햇살을 가리며 그늘진 자리에 나를 앉혔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기쁨으로 나를 업은 사람의 배려였다.


지금도 아이들이 “어부바”를 부르면,

나는 등을 내민다.

허리가 고장 나고, 남들이 걱정하는 눈길을 보내도 상관없다.

내 등에 착 달라붙은 아이의 심장이 좋다.

다리를 까불며 웃는 것도, 목을 감싸는 체온도 사랑스럽다.

이도령이 춘향에게 “업고 놀자” 말한 것이

왜 진짜 사랑인지 나는 안다.


내 등에 아이의 웃음을 싣는 순간마다,

나는 아빠의 등을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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