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집의 뚱뚱한 딸
어쩌면 정말로 내가 복 없는 년인가를 생각한다.
뚱뚱하게 살아온 것만도 고난인데, 그게 단지 몸의 문제인지, 아니면 부모 없이 살아온 흔적이 남은 건지, 어느 쪽이 더 슬픈지 가늠하며 살아왔다.
정신이 들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정신이라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았을 남자와 살고 있고, 내 정신 하나 추스르지 못하면서 애는 셋이나 낳아버렸다. 정신과 의사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 사람의 삶이 너무 평탄한 것인지, 아니면 내 길이 객관적으로 봐도 그토록 가시밭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신세한탄을 해보자.
나는 애도 셋이고, 집으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수업 준비까지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비하도, 변명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집이 어수선하다고 한숨을 쉬며 수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남편과 살고 있다. 그는 설거지나 빨래 개는 일을 내가 출산 후에 누워 있었을 때를 빼면 거의 해 본 적 없다. 쓰레기 버리는 것도 몇 번 하다 말고는, 힘들게 회사 다녀오다 쓰레기봉투를 보면 숨이 막힌다고 한다.
최악은, 본인은 스스로 아주 가정적인 가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집안일을 ‘돕는다’고 착각하며, 내가 우울증으로 죽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저 성격이 더럽다고만 해석하는 인간.
자식복은 어떨까.
나 닮아 공부 잘할 줄 알았는데, 수학은 27점. 영어도 비슷. 국어만 70점이 넘어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놈. 모든 걸 엄마 탓으로 돌리는 공주. 그리고 “엄마 안아줘”를 달고 사는 막내 — 그 애만은 내 기쁨이다.
나는 돌봄 받은 기억이 없어서, 아이들도 그냥 낳아두면 알아서 자라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도 공짜는 없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채 주워 담지도 못하고 서 있다.
물론 살아낸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 남편이 월급을 가져오니 다행이라고,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은 게 복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진심일까, 아니면 자기 최면일까. 스스로 진통제를 놓으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못생긴 주인집 아이처럼 혼란과 역설 속에 산다.
하지만 — 오빠. 나에겐 비밀 남친이 있어서, 나는 또 행복하다.
나는 정말 또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