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는 벗고 싶다

1부 2장 나는 벗고 싶다

by 투명물고기


나는 스스로를 대단히 쿨하다고 여기며 살았음을 고백한다.

뚱뚱해도 눌리지 않고, 못나도 불행하지 않은 존재라고

아무도 묻지 않는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에도 매달리지 않고 자유 영혼인 양 꾸며왔다.


실제로 코르셋을 입은 적은 없지만,

내가 선택해 살아온 방식 탓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숨 막힘을 안다.

단단한 압박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조차, 부서짐의 선물이었다.


내가 갖춰 입은 코르셋은 ‘마땅함’이다.

마땅히 내가 원하는 사이즈에 맞춰 내 몸을 맞춘다.

팬티는 엉덩이에 끼어 간지럽고, 브라는 뒷구리를 파고들어

끈을 매만져 내리는 게 일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알고, 비틀즈 그분들은 “life goes on, bra~(브래지어)”을 노래한 걸까.

그들의 풍자가 나를 향한 날 선 음률이 되어버린다.

맞지 않아도 내가 허락한 치수의 옷만을 입는 나,

힘을 줘도 불룩한 배를 억지로 집어넣느라 숨 쉬지 못하는 어지러움 속에서

Yellow Submarine이 머릿속을 떠돈다.


‘마땅히’와 세트로 갖춰 놓은 아이템 ‘모름지기’는 하이힐이다.

작으면 작은 대로 제멋에 살면 될 것을, 킬힐을 신고 나를 볶아댄다.

재래시장을 걷다 보면 검은 냄비를 구르는 아몬드들을 만날 수 있다.

뜨겁게 달군 냄비 속에서 자동 주걱에 시달리는 그 다글이들.

걔들은 ‘주인 사장님 때문’이라도 하지,

나는 ‘나 때문’이라서 더욱 살갗이 아린다.


잠시 불을 끄고 쉬어도 좋을걸.

측량없이 세운 기준을 맞추느라

시절의 변화와 나의 바람은 모두 뒷전이 된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해서,

언제나 급한 것이 중요한 것을 앞질러 버렸다.


이제는 정말로 벗어버리고 싶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꿰어 입은 코르셋과, 아프고 불편한 하이힐을.

원마일 웨어의 고무줄 바지를 입고,

마음껏 가슴과 배를 부풀리는 상상.

큰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


나는 맨 얼굴로는 집 밖 출입을 못 하는 유형의 사람인가?

아니다. 웃긴 건, 우습게도 나는 ‘쌩얼주의자’다.


나는 화장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몇 번은 화장을 시도해 보았다.

메이크업 클래스 수업을 듣고, 선생님들 추천에 따라

백화점 우수회원이 되도록 제품을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늘 수년 묵은 화장품 세트를

비워내는 것으로 끝났다.

몇 번을 반복하고, 정가 생각에 속이 쓰린 일 이후로

이제는 특별한 자리에서도 언제나 쌩얼이다.


뚱뚱하지만 예쁜 얼굴이라서?

피부가 곱고 예뻐서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다.

나는 뼈대가 크고 눈코입이 작아서 여백이 많은 얼굴이다.

좋게 본다면 옛 어르신들이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라 할 법한 얼굴.

눈 모양도 나쁘지 않고, 코는 버선코, 입술도 적절히 도톰하고 빛깔도 괜찮은데

안타깝게도 모아 놓은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

장점이라면 전문가의 터치를 받으면 ‘비포–애프터’가 극적이라는 것 정도?

그래서 내가 주인공인 특별한 날엔, 망설이지 않고 살롱을 예약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99.9퍼센트 쌩얼주의자로서

동물실험에서도 자유롭고, 자연보호를 실천하는 의식 있는 시민이 되기로 했다.

완벽주의 강박과 패배감이 쌩얼의 원천이었다는 걸 깨달아도

영 마음이 고쳐먹어지지 않는다.

손이 우둔한 탓에, 잘못 손대면 촌스러운 시골 아낙이 되어버리므로

어설플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앵간히 만져서는 예쁘지 않다는’ 패배감과 함께.


정신의 코르셋과 하이힐을 신고 있는 나는

그냥, 날것의 표현에 집착하는 걸 안다.


그러니까 코르셋과 쌩얼 모두

내 안의 치우친 면모임을 인정한다.

모두 숨기거나, 너무 드러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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