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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14. 2023

생판 모르는 남과의 웃음 타임

[ㅌ] 틀리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 외에 쓰려면
고찰해 봐야 하는 말


  근래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란 정서가 확산된 듯싶다가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소수자를 향한 편견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집단 대 집단 간의 다툼에서는 '눈막 귀막'을 내세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된 커뮤니티와 실제로 얼굴을 맞대는 현실 사회의 예법은 통용될 수 없는데, 커뮤니티 속 논제를 일상으로 끌고 오면서 사회가 날로 요상해진다. '수저 논란', '인서울 논란'을 비롯한 등급 나누기부터 '깻잎 논란', '축의금 논란' 등 별의별 논란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며 인터넷 기사로 확산된다. '논란'이란 단어를 붙임으로써 논란을 양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원래 [ㅌ] 편의 주제로 '택시'를 꼽으려 했다. 택시를 논란의 주제로 집어넣는다면 '택시 안 대화 논란'이 되겠다.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이건, SNS 상이건 많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말 걸어주면 좋겠다'는 소수 중의 소수파로서 이 주제가 언급될 때마다 이해 못 받는 편이다. 기사님들과의 대화가 내게는 아주 재미지다. 이 말을 하면 "자식 자랑하는 게 뭐가 재밌어!"라는 반응이 꼭 돌아온다. 재밌는 주제야 사람마다 '다르지', 열낼 일인가 싶다가도 저들은 택시 안에서 불쾌감을 경험해 본 적 있어서 그럴 테니 넘긴다. 내 취향과 남들의 취향은 데이터에 기반한 결과인 셈이다.


  그 때문에 '택시'를 단어로 선정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 '택시'의 정의가 다수의 정의와 다를 걸 알아서다. 그렇다고 다수 의견에 맞춰 쓸 생각은 없다. 내 취향이 틀린 게 아니라 저들의 취향과 다르기 때문에 한쪽이 고칠 일도, 서로가 열 낼 일도 되지 않는다. 또, 택시를 정의 내릴 만큼 택시가 내 삶에서 친숙한 대상도 아니다. 앞으로도 될 일이 없다. ㅎㅎ 시내버스 1250원 아까워 걸어 다니는 사람은 현재 택시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택시를 혼자 타는 경우는 년에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힐 듯한데, 생소한 만남이라 더 재미를 취하려는 걸 수도 있겠다.




  '자식 자랑'은 택시 기사님들의 단골 소재다. 내가 택시를 타는 경우는, 막차가 끊기기 전 터미널로 얼른 가야 할 때다. 대학가에서 택시를 타다 보니 기사님들은 '대학'이란 주제로 물꼬를 트신다. 내 대학은 맛보기용으로 물어보시고 기사님의 자제가 어디 대학을 나왔고,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 등 정보가 주어진다. 두 번째 단골 소재는 '사랑' 같다. 애인이 있는지, 란 질문으로 시작된다. 사랑과 거리가 먼 나는 사랑에 익숙한 기사님들께 도리어 질문을 던진다. 기사님들의 꿀팁은 요즘 MZ 세대에 안 맞아 보이지만 확실히 신선하다. 아무래도 내가 자식 뻘이라 그런가 '부모' 내지는 '효도'가 주제에 오를 때도 있다.


  택시에서 내릴 때 "재밌었어요"나 "대화해 줘서 고마워요"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기사님만 웃으셨나, 나도 따라 웃었지. 이쯤 되면 막차를 놓칠까 하는 불안은 저 멀리 사라진 채 흥겨운 여운을 안고 터미널로 들어간다. 이는 내 경험담이다. 택시 기사님에게 불쾌한 발언을 들은 경험담은 친숙하실 테니 내 기준의 재미도 소개해 봤다. 기사님들의 단골 소재가 사적 범주인 건 맞다. 한 번 보고 말 사이니 서로 정보가 필요한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대화'라는 게 꼭 아는 사람과 한정해서만 나누어야 하나. 최근 내가 가장 많이 웃은 순간은 하천가에서 만난 할머니와의 대화였다.


  "23살?! 하이고!!! 23살이라고?" 할머니는 내 나이를 물으시곤 꺄르륵 웃으셨다. 내 어머니 나이도 물으시고는, "하이고!!! 우리 며느리 나이랑 똑같네 그래~~~" 또 신명 나게 웃으셨다. 강아지 자랑하시다 말고 우리 모녀 나이가 그리 웃기신 지 할머니의 발랄한 웃음소리에 나 또한 웃음이 났다. 대화의 내용도 중요한 요소가 맞지만 우연히 마주하게 된 타인의 웃음이 내게는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중요한 대화야, 매일 얼굴 부대끼는 사람들과 나누면 되지. 한 번 보고 말 사이에 '선'이란 게 그어져 있어야 할까. 선이 생김으로써 불쾌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부작용도 발생한다. 선을 긋다 보면 무의식 중 자기 자신을 우위에 올려 둔 채 행동하기 때문이다.




  "알바생한테 고맙다는 말을 왜 해야 돼? 저 사람들은 돈 받고 하는 건데."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왜 안 돼? 어차피 미화원들이 치울 거잖아."

  "버스 안에서 왜 통화하면 안 돼? 나도 돈 내고 탄 건데."

  몇몇 이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실존한다. 특히나 1020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예상해 본다. 이 경우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지만 이 사람들은 '나 자신'을 이미 우위에 올려두기에 타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면 안 된다는 지적에 "나는 틀린 게 아니야, 너와 다른 거지"라고 우기는 사태가 벌어진다. 예시로 든 문장에 '재화'란 존재가 포함된 것처럼 소비자가 되는 상황에 특히나 심해진다. '갑질'이 회사 내 갑과 을 사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백화점을 넘어 동네 문구점에서도 일어나는 까닭이다.


  '선'을 긋기 전에 생각해 볼 지점은 선을 그으려는 목적이 '내 기분'인지 '타인의 태도'인지다.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닌 관계에서는 '내 기분'이 우선이 되어야 함은 맞다. 내 기분 억눌러가며 친구나 애인 등을 위해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닌 사회적 관계에서도 '내 기분'을 우선으로 둔 채 행동한다면 심하게 말해 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생판 모르는 남이 자기의 기분을 해친 들 투덜거릴 수 없어지는 거다.


  '스몰 토크'의 기준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몰토크는 '자랑' 같다. 자랑이 반복되면 누구나 듣기 싫지만 '자랑'이란 행위 자체에 선을 그어버려선 안 된다. 남이 자랑 한 마디 했다고 길길이 날뛰어 버리면 스스로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자랑을 자축하고 말아야 한다. "저 사람이 내 기분을 망쳤어"를 따지기 전에 저 사람의 기분 또한 한 번쯤은 살펴봐야 배려받을 수 있게 된다. "나만 소중해" 혹은 "내 사람만 소중해"란 정서 또한 강해지고 있으나 가정-학교-사회로 소속 범위는 날이 갈수록 넓어지는데 생판 남에게 선부터 긋고 본다면 '내 사람'들이 떠나고 나선 고립만이 기다린다.


  평생 가는 인간관계는 없다. 친구 간의 절교를 넘어 가족 간의 절연도 빈번한 요즘이니 말이다. 관계에 속박되라는 말이 아니라 만들어지지 않은 관계에까지 선부터 긋지는 말라는 뜻이다. 생판 모르는 남과 웃음을 주고받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잔상을 남긴다.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돈 주고도 못 살 경험, 겪어서 나쁠 게 뭐 있겠나.


'틀리다'의 용례
1) 네 기호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2) 네 편견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야
사람에게든 동식물에게든 사물에게든 다정을 베풀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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