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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28. 2023

할머니! 김치 냉장고가 떠났어요

  태어나니 아빠 한 명, 엄마 한 명, 언니 한 명에 할아버지도 한 분이는데 할머니 두 분이다. 친할머니 혹은 외할머니라는 명칭을 배우긴 했으나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말할 때면 어색함이 혀끝에 진하게 남았다. 결국은 다섯 글자로 늘여 부르게 됐다. 우리 부모님의 고향이자 할머니들의 주소에 맞춰 <증평 할머니>와 <괴산 할머니>가 할머니들의 호칭이 되었다. 한 분의 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로 괴산에 사셨는데, "할아버지~"이라고만 해도 부모님이 다 알아들어서 상관없었다.


  증평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셔도 요리는 즐겨하지 않으셨다. 외할아버지 제사 외의 만남에서는 외식, 배달, 그도 아니면 단출하게만 먹었다. 증평 할머니의 최애 음식은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증평에는 인삼 축제라는 게 매해 열리는데, 축제에서 파는 음식들을 나보다 더 잘 드셨다. 그런 까닭에 증평 할머니 댁에 있는 커다란 김치 냉장고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냉장고에도 자리가 많던데, 김치 냉장고까지 왜 필요할까. 증평 할머니는 김치가 그리 좋나.... 그렇다 해도 저리 클 건 또 뭔가' 싶은 궁금증이 자주 일었다. 입이 세 개에서 네 개인 우리 집에도 김치 냉장고는 없었다. 사실 둘 자리가 없기도 했다.


  엄마가 염원하던 자가 마련을 이뤄냈을 때, 증평 할머니는 막내딸에게 김치 냉장고를 투척하셨다. 이때도 김치 냉장고라는 게 왜 우리 집에까지 생기는지 이해가 안 됐다. 우려와 달리 김치 냉장고 큰 사랑을 받. 나는 김장을 구경한 적도, 직접 담가본 적도 없다. 사하게도 엄마에게 갖다 주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사 먹을 일 또한 없다. 할머니도 엄마처럼 좋은 지인이 많으셨으니 이곳저곳에서 김치를 얻어 오시느라 그 큰 김치 냉장고를 두신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증평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커다란 김치 냉장고는 우리 집으로 이사 왔다. 기존의 김치 냉장고는 보일러실 창고에 갇히게 됐는데, 세상에나! 증평 할머니의 사랑이 깃든 냉장고가 다른 이도 아닌 아빠에게 양도됐다. 이래도 되나.... 증평 할머니가 제일 싫어하신 인간이 땡 서방인 우리 아빠인데.




  아빠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 이상을 머문 지 어느덧 5년 가까이 됐다. 기존 김치 냉장고를 가만히 둔 것도 아빠의 고집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꼭 가져갈 테니 잠시만 집에 둬 달라"라부탁한지라, 보일러실은 코끼리 코 한 바퀴도 못 돌 만큼 좁아지게 됐다. 보일러실이 저리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김치 냉장고 가지러 인부와 오겠다"라고 선포했다. 보일러실 문은 다른 문보다 작은 편이기에 김치 냉장고가 이동할 수 없다. 대신 보일러실과 연결된 내 방 창문을 통해서만 꺼내질 수 있다. 문제는 아빠가 고집을 부린 1년 동안 내 방 살림살이가 꽤나 늘어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제대로 빼낼 수 있겠어?"라는 의심에 "아빠가 알아서 할게"라는 아빠의 18번 대답만 돌아왔다.


  아빠가 지정한 일요일, 안방(* 내 방 침대 둘 공간이 없어서 아무 데서나 잔다)에서 일어나자 엄마가 죄인인 양 다가왔다. 내가 화낼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엄마의 고백에 "또 내 방 바꿨구먼?"이라 말했다. 역시나였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가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게 참 싫었다. 그런다고 정해진 평수가 넓어지는 것도 아닌데 저러다 괜히 허리라도 다칠까 봐 신경 쓰였다. 내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서는  구조가 멋대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다. 상호 합의 간에 이루다. 그런데도 하필 이번에 바뀐 건 뻔했다. 김치 냉장고가 내 방 창문을 매끄럽게 통과하고, 내 방문을 원활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배치를 손 본 거였다.


  괴산 농지는 작은 아버지가 물려받다. 아빠는 매주 일요일마다 괴산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일요일 새벽부터 동생 도우러 떠난 아빠는 엄마의 노고를 목격하지 못했으리라. 나 또한 잠귀가 어두워 엄마 혼자 부단히 움직이게 하였으니 아빠를 괘씸히 여길 순 없다. 아무튼 아빠가 인부라며 데려온 은 다름 아닌 작은 아버지였다. 패트와 매트 마냥 김치 냉장고를 업고 이동하는 둘을 1층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모녀의 귀가가 <김치 냉장고 이사 시간>과 딱 겹친 거였다. 김치 냉장고는 그렇게 농지 근처 창고에 자리 잡을 예정이란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지치지도 않은지, 이번에는 김치 냉장고가 빠져나간 보일러실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부쩍 증평 할머니 생각이 났다. 증평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사주신 김치 냉장고가 아빠의 손을 거쳐 괴산으로 이사 간 과정이 내게는 예상 못할 일이다. 증평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고생만 한 막내딸이 농부의 장남에게 시집가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다. 결혼 얘기가 오갈 당시에는 아빠를 받아들이셨으나, 아빠가 약속과 달리 엄마를 농지에 데리고 다니자 크게 호통치셨다. "내 딸 손에 물 안 묻히겠다면서 지금 뭐 하는 겐가!" 할머니의 이 말씀은 직접 듣지 못했는데, 텍스트만으로도 생생하게 들려온다. 증평 할머니는 아빠를 꾸준히 미워하셨고 그런 아빠에게 못된 말도 줄기차게 .


  나의 할머니이기 전에 엄마의 어머니이기에 손주인 내가 해하고 자시고 할 문제 아니다. 다만 만약 나였다면 백날천날 혼내키는 장모님에게 쫄았을 거 같다. 그런데도 아빠는 엄마와 별거하는 기간에도 증평 할머니 댁에 혼자 가며 <꼴 보기 싫 얼굴>을 비추었다. 증평 할머니가 "땡 서방, 네 이놈!" 시동을 걸어도 몸에 좋은 농산물과 즙을 내밀며 바보 웃음을 지었다. 호랑이 같던 증평 할머니는 급격히 몸이 노쇠하시며 내가 마음 준비할 새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빠는 증평 할머니의 장례식 동안 사위로서의 임무를 톡톡히 하였고 최종적으로 이 일을 계기로 엄마의 앙금도 거의 풀리게 되었다.


  증평 할머니가 사 주신 김치 냉장고를, 할머니 어하시던 괴산으로 가져 간 아빠. 할머니는 뭐라 생각하셨을까. 아빠가 김치 냉장고를 데리러 오기 전에, 아빠를 위해 손주 방 구조까지 싹 바꾼 엄마를 보며 할머니는 뭐라 읊조리셨을까. "그렇게 당해도 저 놈팽이를 끼고 사네!" 뒷목을 붙잡으셨을지, 아니면 "그래, 이젠 엄마도 땡 서방을 용서하마"라며 아빠를 향한 손가락질을 거두셨을지.... 손주는 알지 못한다.


할머니의 김치 냉장고는 저희 집에서 잘 숨 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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