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그냥' 갈 수는 없는 곳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강력한 스펙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사람들은 대학 가라는 말을 참 쉽게도 내뱉지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데다가 들어가기까지의 과정도 참 고단하다.
이전 글에서는 대학 면접이 즐거웠다고 말했지만 면접을 준비하면서는 양심의 가책을 부단히도 느껴야 했다. 합격날 흘린 눈물에는, 내가 누군가의 간절한 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크게 작용했다. 입시 과정이 온전히 나의 몫이었던 것처럼 나를 대학에 밀어 넣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동요를 눈치 채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달리 말해, 나의 말들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숱한 가르침이 무색하게 수시는 거짓 범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서 막막한 20대들이 많고, 30대가 돼서 꿈을 재고해 보는 이들도 많은데 10대는 오죽하겠는가. 학교, 친구, 공부 말고는 접한 게 적은 평범한 19살은 자기소개서 쓰는 것부터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입시 컨설팅을 받아 온 일부 학생들은 몰라도 매 학기 시험 공부하기 바빴던 10대가 미래를 어찌 확신하겠는가.)
완전하지 못한 꿈을 갖고 합격시켜 달라고 피력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더해지게 된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학교도 생기부 작성에 학생 개개인의 의견이 중요했다.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은 선생님들께서 판단하셨지만, 그 외의 경우 학생이 직접 소감을 써서 제출했다. 이미 이때부터 거짓말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정시보다 수시 합격생들이 훨씬 많았다. 학교 내에서 여는 행사며 대회가 워낙 많았고 동아리도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선배들은 갓 입학한 1학년 생에게 우리 동아리는 생기부를 잘 써 준다고 홍보하기 바빴고, 1학년들은 생기부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했다.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한 열기에서 한 발자국도 아니고 열 걸음은 뒤로 물러나 있어서 해당되진 않았다. 고등학교는 별로 즐겁지도 않았다. 진학하고 싶지 않았던 데다 중학교 때보다 더 치열해진 성적 싸움에 회의감을 느끼고는 나가떨어졌다. 재미 붙일 곳이 필요했으니 책만큼은 꾸준히 읽었다. 입시 미술 관두고 나서는 책에 더 의지했다.
고로 합격에 중요 요인이었던 '다독'은 사실이었지만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독서란은 수시생들에게는 중요 근거가 되어준다. (매해 입시 요강이 바뀌기에 지금은 다를 수 있다.) 이 학생이 어떠한 꿈을 가졌으며 꿈과 관련하여 어떠한 책을 읽어왔는지 평가하는 게 우습기는 하다. 확고한 꿈이 정해진 친구들도 적은데, 학생의 독서 기록으로 꿈의 간절함을 측정할 수 있나? 이 이상함을 전국의 수시생들이 군말 없이 따른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소설 편식이 심했고 이를 자연스럽게 과장해야 됐다. 출판사 문학 편집자가 내 거짓 꿈으로 정해졌고 이에 따라 자기소개서를 쓰며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에서 문학 교류의 동향을 질문받은 건 교수님들의 사악함이 아니라 내가 그러한 거짓말을 쳤기 때문이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왜 우리 학교에 오고 싶은가'를 집요하게 물어본다. 이러한 질문에 솔직함으로 답하는 건 불합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문학의 ~~~ 한 점에 흥미를 느꼈고, 그 때문에 ~~~ 한 책을 읽어 왔으며, ~~~ 한 꿈을 품었습니다. 이 학교의 ~~~ 한 수업 과정은 저의 ~~~ 한 진로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 한 학과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 한 경험을 쌓고 싶으며, 추후 ~~~ 로 나아가는 데 ~~~ 한 영향을 미치고 싶습니다.
잘은 생각 안 나는데 대충 이랬다. 이것도 거짓말! 저것도 거짓말! 거짓말 범벅에 사실 한 스푼 첨가한 거라 거짓말과 사실의 '혼합'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소설은 재밌어서 읽었고, 공부보다 독서가 좋았으며, 꿈은 없는데 대학 합격이 꿈은 아닌 건 확실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스스로 거짓말한 주제에 누굴 탓하리.
입학하고 나서도 자기소개할 일이 많았는데 이때도 거짓말이 되풀이되었고 이러다 거짓된 인생을 살겠구나 싶었다. 작가님에게 고민을 보낼 수 있는 출판사 이벤트에 진지하게 편지를 써 볼 만큼 한 번 밀려온 회의감은 물러갈 생각을 안 했다. (발송하진 않았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