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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학번, 나쁘지 않은데요?

by 밀과참

제목에 적은 대로 코로나 학번, 즉 20학번으로 입학했다. 2월 초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가졌는데 어째 상황이 심각해져 갔다. 기숙사 입주와 개강은 며칠씩 미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3월 중순이 돼서야 별 수 없다며 <기숙사 입주 NO, 수업은 비대면으로!>로 못 박았다.

이때 노트북이 내 곁으로 왔다. 줌 수업 때 캠을 켜야 됐는데 우리 집 컴퓨터에는 캠 기능이 없어서였다. 엄마의 상사분께서 주신 오래된 노트북이지만 얼굴은 선명히 잘 나왔고 몇 시간 내리 수업을 들어도 끄떡없었다. 현재도 동고동락 중이다. 수명이 위태로워 밖에 데리고 나가지 못하는 데다, 다들 노트북 좀 사라고 성화지만....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노트북이다.


입학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휴학 신청이 언제부터 되는지 찾아본 거였다. 1학년 1학기인 신입생(1학년 2학기부터 '재학생'이라 부른다)은 휴학이 안 된다는 공지를 보고 크게 실망했지만 코로나로 첫 대학 생활은 무사히, 나름 재미있게 넘길 수 있었다.

'코로나 덕분'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테다. 당시 사회가 어땠는지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저마다 좋지 못한 가정사(事와 死 모두)가 벌어졌고, 나 또한 병원에 계신 할머니와 만나지 못했으니 코로나를 심히 증오한다. 다만 팬데믹으로 인해 대학 생활은 뜻밖으로 흘러갔고 그게 개인적인 궤도에 있어선 좋은 영향을 끼쳤다.


1. 앞서 말한 노트북과 만나게 됨

2. 평일 낮에는 혼자 있던 강아지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서 많은 추억을 쌓음

3. 비대면으로 집에서 수업을 들으니 돈 나갈 일이 굳음

4. 각 잡고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게 됨

5. 생각할 시간이 많아짐


위 5가지 중 가장 뜻깊은 건 2번이지만 여기서는 5번을 풀어보고자 한다.


첫 학기에는 한 수업 빼고 모두 녹화 강의로 진행되었다. 당시 만난 교수님들은 부지런하신 건지, 나처럼 줌이 익숙하지 않으신 건지 미리 영상을 찍으신 후 시청 가능 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해 두셨다. 원래도 새벽형 인간인 데다, 할 일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잠드는 걸 못 견뎌하기에 12시 땡 하는 순간 수업을 들었다. 늦게는 3~4시까지 들으며, 전부 '학습 완료' 상태가 돼서야 잠에 들었다. 그 자리에서 해치울 수 있다면 과제도 곧장 제출해 버렸다.

원래 같으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오전~한낮의 시간이 완전히 자유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본래 생각이 많은 편이지만 2020년은 사색의 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생각에 잠기는 수준이 아니라 넘칠 지경이었다.




동기들과 만나긴 했어도 가까운 사이가 되지는 못했다. 저마다 다른 지역에 있으니 만날 날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친구들도 나처럼 타지로 떠나지 못한 채 본가에 머물렀고 상황을 봐 가며 약속을 잡았다. 졸업 후 더는 만나기 힘들 줄 알았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학교 밖의 공간에서 학교 외의 얘기를 나누니 관계의 깊이가 달라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란 존재가 갖는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학년 대상으로 개설된 전공 수업은 별 수 없이 들었지만 남은 학점은 '교양'으로 채울 수 있었다. 궁금했던 학과의 교양 수업을 들으며 즐거움에 젖어갔다. 교수님의 말씀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받아 적을 만큼 나는 공부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는 걸, 정규 교육이 안 맞았던 거라는 걸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시기를 기점 삼아 소설 편식을 고쳤고, 알고 싶은 분야의 책을 찾아 읽어가며 '지식'이란 걸 습득해 나갔다.

초, 중, 고 다닐 적에는 매분기 돌아오는 시험에 몸서리치기 바빴는데, 대학 시험은 입학 전의 면접보다 더 재미있었다. 정해진 답이 아니라 내 생각, 그것도 논리 정연한 풀이를 요구하는 게 신이 나서 흐르는 땀도 무시해가며 마구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당시엔 중간 말고 기말만 보았는데 교양 기말 시험을 치르던 날, 내가 있던 곳은 대학 내 공간이 아닌 방구석이었다. (전공은 대면으로 봤으나 대부분의 교양은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선풍기가 탈탈 돌아가고 있었지만 선풍기 바람이 소용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는지, 답안지를 제출한 후 거울을 보니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시험에, 배움에 심취할 수도 있음을 몸소 경험하였다.


참고: 이렇게 회고하면, "거 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대학 가서 생각해 보라 했지?"라는 어른들의 웃음이 들려올 것만 같다. 이 같은 기쁨은 비대면 때 그쳤고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이전 글에서 서술했던 이상 행동들이 발현되었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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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설명: 낮 시간이 비니 외출도 자유로웠다. 우리 지역은 대도시만큼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드러그스토어에 들어갔다가 세일 가판대를 한참 구경했다. 고민 끝에 내게 없는 팩트를 샀다. 미성년자 때는 선크림을 바르고 다니느라, 파운데이션이라는 게 사람 피부톤에 따라 숫자가 다르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위 팩트는 내 피부톤과 전혀 맞지 않아 금방 선크림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금 봐도 참 예쁜 디자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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