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에서 서술한 감정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른들과 가치관이 맞지 않아 반감을 가졌던 건 사실이나, 그분들이 저에게 상처 줄 의도로 군 게 아님을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시종일관 날 선 태도로 굴고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도 한몫합니다.... ^^ 그러니 어른 vs 학생의 대립 구조가 아니라 저와 사회의 충돌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국 사회가 바뀌어야 답습되지 않을 일이니까요. ※
합격 발표가 난 이후, 모교인 중학교에 찾아갔다. 중학생 시절 살펴줬던 선생님께 안부 인사 드릴 겸 간 건데 날 가르쳐 주셨던 다른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날 "아무래도 XX 고등학교니 대학을 잘 갔네?"란 소리를 들었다. 자제분이 나처럼 수험생이던 선생님은 껄끄러운 표정을 못 숨기셨다. 어떤 어른들은 대학 가라고 혈안이더니, 또 다른 어른들은 잘 갔다고 탐탁지 않아 하는구나, 짜증 나는 한편 속상했다.
축하받지 못해서 이런 게 아니었다. 애당초 축하받자고 온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들께서 물어보시니 입학 예정인 학교를 말하고, 궁금해하시니 고등학교 성적도 털어놓은 건데, '나의 3년'이 아니라 'XX고 학생'으로만 결론 맺어지는 게 답답했다.
1. 출신 고등학교가 대학을 잘 보내는 학교인 건 맞다. (이 때문에 좋지 못한 소문도 있었다.)
2. 다만 나는 상위권도, 중상위권도 아닌 중위권이었다. 이과 과목은 하위권이었다.
3. 면접에서는 성적 관련 질문을 아예 받지 않았다. 이에 가장 놀란 건 창피한 성적표 주인인 나였다.
4. 평가자(교수님)들은 다독과 문학을 향한 깊은 관심, 봉사 활동을 갖고 평가하셨다.
학생부 독서기록란은 교내에서 가장 길었다. 자소서는 매끄럽게 쓰되 특이점을 주려 노력하여 선생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입시에는 무지했지만 자소서만큼은 친구들이 첨삭을 부탁할 정도였다. 면접 준비도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 내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건 나 자신이 가장 잘 아니까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높이 사는 성향이라 더 그랬다.
선생님들만 이러셨겠는가.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선 내 입시가 화두에 올랐다. 통화할 때는 모른 체하던 부모님도 고할 수밖에 없었는데, 친척들은 학교 순위를 매기시며 "누구가 가장 높은 대학이네!" 하셨다가 "아니죠. YY대인 누구가 있잖아요." 하셨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이래서 학교와 어른이 싫었다. '결과'만 보려 하니까, 어떠한 뜻을 품든 <학생이니 졸업부터 해>로 귀결되고, 노력을 얼마나 하든 결국엔 학교 간판으로 치부되어 버리니까.
입학 전과 후, 미성년자일 때와 성인이 된 후, 어느 때가 됐든 '그들'은 내 얘기에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대학에 합격했다는 결과이니까.
3월이 시작되기 전에는 '에브리타임'이란 어플을 깔았다. 어른들은 높이 쳐주던 대학을, 재학생들은 까내리기 바빴다. '지잡대'라 적힌 글이 수두룩 빽빽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나선 입학철마다 이 흐름이 반복된다는 걸 알았다. 나처럼 운이 좋아 합격한 학우들도 있겠지만, 목표한 곳들 중 평판이 가장 낮다고 여기는 학우들도 있었으리라. 또 친구들이 어느 대학에 갔냐에 따라, 반수와 편입에 성공했냐에 따라 비교질을 해댔다. 자기 비하가 학교 비하로 이어진 거였다.
고등학교 평판이 대학 합격의 원인으로 치부됐듯, 대학에 들어서는 순간 이러한 '결과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은 체념이 들었다. 학교가 싫었던 건 학교의 시스템이 나와 맞지 않아서였고,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던 건 배움에 목마르지도 않은 데다가 가정형편도 좋지 못해서였다. 나는 언제나 타당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른들이 내가 납득할 만한 반박을 던진 적은 없었다.
'내 미래'와 '사회 시선'을 방패로 내밀며 자퇴를 번번이 막았고, 입시 준비를 강요했다. 내 미래는 나의 것, 사회의 시선을 받는 것도 나 자신이니 이 또한 내가 감당할 몫이라 소리쳐도 <애송이> 취급당했다.
다수의 어른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대학에 가 보고 맞는지 안 맞는지를 결정해라"였다.
막상 합격이 정해지고 나니, 나는 대학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잘 갔다는 둥 운이 좋았다는 둥 평가 듣기 바빴다. 대학 생활이 어땠는지 말하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대학 잘 갔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우스웠다. '잘'의 기준은 나의 적응이 아니라, 결국은 학교 간판이란 걸 깨달았다.
어른들의 말은 내가 대입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거지, 자퇴를 막은 이유와 마찬가지로 '사회 평판'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알아차리며 배신감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입학했다.
서두에서 말했듯, 쓴소리를 했던 어른들은 나름의 주관과 사정에 기반해 그리 구신 걸 테다. 지금은 모진 말을 들어도 그게 해당 집단의 불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생각 차이일 뿐! 대신 편견 어린 생각은 고칠 필요가 있고, 고치기 위해서는 사회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